인턴기자의 광양문화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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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양뉴스
  • 승인 2019.07.26 18:59
  • 호수 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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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서 나고 자랐지만 몰랐던 소중한 문화재‘정병욱 가옥’
정병욱 없었다면 못 만날 뻔…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서시’

진월면 망덕포구를 따라 수많은 횟집들이 줄지어 있다. 그 횟집들 사이에 언뜻 봐도 오래돼 보이는 주택이 자리해있다. 주변의 현대식 건물과는 확연히 차이나는 모습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자연스레 멈춘다.

이 주택의 정체는 바로 윤동주 유고가 보존됐던 정병욱 가옥이다. 광양에서 나고 자랐지만 이곳을 처음 알게 됐다. 어쩌면 나처럼 광양에 있어도 잘 모르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광양 문화재에 관심을 가져보자고 다짐하며, 설레는 마음을 안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에 따르면, 정병욱은 윤동주와 인연이 매우 깊었다고 한다. 1940년에 지금의 연세대학교인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한 정병욱은 선배인 윤동주와 만나게 된다.

“내가 동주를 알게 된 것은 연희전문학교 기숙사에서였다. 오뚝하게 쭉 곧은 콧날, 부리부리한 눈망울, 한 일자로 굳게 다문 입술, 그는 한마디로 미남이었다.”정병욱이 말한 윤동주의 첫인상이다.

둘은‘글벗’으로 점점 가까워졌다. 1941년에는 함께 하숙을 했고, 윤동주가 시를 쓰면 가장 먼저 정병욱에게 보여줄 정도였다. 윤동주는 졸업할 때 시집을 발간하려 했는데, 일제의 탄압으로 자필원고 3권을 남겨놓게 된다. 그리고 그 중 한권의 원고를 가장 친했던 정병욱에게 맡긴 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정병욱은 1944년 일본군에게 학병으로 끌려가기 직전, 광양에 내려가 어머니에게 윤동주의 유고를 보존해 달라 부탁한다. 정병욱의 어머니는 시집을 명주 보자기에 싸서 쌀독에 넣고 쌀을 채워 마루 밑에 숨겼다. 일제의 단속을 피하기 위한 어머니의 지혜도 윤동주의 유고 보존에 큰 역할을 한 것이다.

광복 이후, 정병욱은 무사히 광양에 돌아와 윤동주의 연희전문 동기인 강처중과 함께 윤동주 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를 출간했다. 그 덕분에 1948년, 윤동주의 시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설명을 모두 듣고 나니, 비로소 정병욱 가옥의 가치를 또한번 깨닫게 됐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詩)인 윤동주의‘서시’가 정병욱이 없었다면 만나지 못할 뻔 했다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또한 내가 사는 지역에서 지켜야할 소중한 문화재임에도 불구하고,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것을 반성하게 됐다.

특정 지역에 살면서도 그 지역의 문화나 역사 등에 대해 무심한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유명한 관광지나 문화재가 가까이 있으면서도,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며 자랑스레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누구에게나 알리고픈 문화 자원을 갖췄음에도, 지역민이 이를 아끼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무조건적인 홍보는 의미가 없을 것이다. 지역 문화재의 존재를 가치 있게 하려면 지역민이 이를 잘 알고 지켜나가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진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