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방지축 귀농 일기[25] 말벌집 제거 작전
천방지축 귀농 일기[25] 말벌집 제거 작전
  • 광양뉴스
  • 승인 2019.10.04 18:07
  • 호수 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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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식 시민기자

고사리 농장 주차장 돌담에 장수말벌이 집을 지었다.

예초기 날이 말벌집 입구를 스치는 순간, 수십 마리가 한꺼번에 공격해 오는걸 보고 혼비백산, 빛의 속도로 도망을 쳤다. 먼저 발견하고 뛰었기에 벌에 쏘이지는 않았지만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아 이날 작업은 더 이상 할 수가 없었다.

이 놈들이 살고 있는 위치가 매일 들르는 주차장이라서 그냥 둘 수가 없기도 하지만 세력을 더 키우기 전에 제거를 해야 한다.

이튿날 말벌 포획 전문가 두 분이 오셨다. 양봉을 하고 계시는 문영호 님께 부탁을 드렸더니 지인과 함께 기꺼이 와 주셨다. 벌집 위치를 확인하고 전투태세에 돌입한다.

안전한 복장을 갖추고 작전개시.

수십 마리가‘웅~웅’공포음을 내며 싸움을 걸어온다. 곤충 채집기(잠자리채)가 허공에서 춤을 출 때마다 한두 마리씩 실종된다.

잡은 말벌은 미리 준비한 꿀 병에다 퐁당 퐁당. 생포를 해서 꿀에 넣으면 그들이 뿜어내는 독이 고스란히 담겨 약성이 배가 된다고 했다. 병에 담긴 숫자가 많아질수록 허공을 날아 다니는 벌들은 줄어들었지만 끊임없이 날아오는 녀석들은 있었다.

외출 했다가 어둠이 내리면서 귀가를 서두르는 놈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벌집을 제거하기 위해 돌담을 두드려도 보고 막대기를 이용해 자극을 줘 봐도 벌집이 보이지 않는다. 집을 찾아오는 벌들은 점점 많아지는데 집이 보이지 않은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벌들이 드나드는 입구를 지나면 깊숙한 곳에 벌집이 있긴 할 텐데 담을 무너뜨릴 수가 없어 말 벌집 얻는 걸 포기 하고 철수를 했다.

잔당들을 제거 하는 일은 내 몫이 되었다. 날이 밝기를 기다려 살충제를 벌 집 입구에 뿌리러 갔다.

“입구에다 농약을 뿌려두면 몸에 묻어 시름시름 앓다가 죽은께 그렇게 해 보세요”

철수하면서 남기고 간 전문가의 말을 따르기 위해서였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 시키며 잽싸게 농약을 뿌리고 도망을 치는데 손등이 따끔..

당했다. 손톱으로 밀어 침을 빼냈는데도 금방 부어오른다. 극심한 통증을 참으며 복수를 계획한다.

밤새 내리던 비는 아침까지 그치지 않고 내리고 있다. 비 때문에 날개 짓이 자유롭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당장 작전을 전개하기로 했다.

장화를 신고 비옷을 입었다. 비를 피하려고 비옷을 입은 건 아니다. 그 놈들 공격으로부터 갑옷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모기 방지용 그물도 얼굴에 뒤집어쓰고 고무장갑을 끼는데 퉁퉁 부어버린 손등 때문에 어려움이 따른다.

준비는 끝났다.

‘막걸리 트랩’이라는 곤충 포획기구를 만들어 설치하고 부탄가스로 화형(火刑)을 시키기 위해 접근했다. 완벽하게 보호구를 착용했는데도 두렵다. 무섭다. 접근하기가 망설여진다.

고양이 걸음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하는데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져 있었다. 담 넘어 풀밭이 어지럽게 파헤쳐져 있었다. 말벌 집은 부서져 나뒹굴고 있었고 집을 잃은 벌들은 주위를 맴돌며 대책 회의를 하고 있었다.

공격을 당한 시간이 오래되지 않게 느껴졌다. 근데 왜 벌집을 가져가지 않고 버렸을까?

막걸리 트랩을 감나무에 매달기 위해 올라가는데 멧돼지 발자국과 근처에 있는 물구덩이에서 목욕을 한 흔적이 보인다. 멧돼지란 놈이 목욕을 마치고 몸보신까지 하고 갔던 모양이다.

애벌레를 먹기 위해 돌담은 건드리지 않고 그 너머에 있는 흙 만 파내는 신기한 기술을 보여주며 벌집을 제거해 주고 떠났다.

먹이 사슬의 정점에 있어 개체수가 엄청나게 많아진 멧돼지의 행패에 대처할 방법은 없다. 고구마와 감자 같은 뿌리 작물은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밥상을 차려준 결과만 낳았고, 밤 산도 그 놈들이 떼 지어 다녀가는 날은 쑥대밭이 되기도 한다.

키가 닿지 않은 단감나무를 힘으로 넘어뜨려 따 먹기도 하고 배나무를 흔들어 끼니를 때우고 가는 일도 있다. 지렁이를 파먹기 위해 땅을 후벼 파고 다니는 그 기술을 오늘 유감없이 보여주고 갔다.

근데 배시시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걱정이 되기도 한다. 벌집을 파낼 때 엄청난 저항을 받았을 거고, 수십 마리가 독을 쏘아대며 얼굴을 공격했을 텐데 어떻게 참았을까.

그 놈 주딩이가‘띵나발’이 돼 있을 걸 생각하면 참기 힘든 웃음이 얼굴 가득 피어오른다.

벌집을 건드려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부은 귀여운 강아지 얼굴 사진이 화재가 된 적이 있었다. 멧돼지 얼굴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