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사람, 사진가 이경모를 찾아서
광양사람, 사진가 이경모를 찾아서
  • 김영신 기자
  • 승인 2019.10.18 16:55
  • 호수 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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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사진가·종군사진기자 이경모

광양의 문화콘텐츠로 살려내자 (1)

 

광양출신 사진가 이경모 선생은 한국 사진계에 업적을 남긴 인물이지만 정작 고향인 광양에서는 전혀 조명이 되지 않고 있다.

지난 2009년부터 이경모 기념관을 건립하자는 움직임이 잠깐 일기도 했으나 지금까지 이렇다 성과 없는소리 없는 외침 그치고 있다.

광양신문은 창간 20주년을 맞아 의미 있는 일을 추진하고자 이경모 선생의 발자취를 더듬어 그가 남긴 카메라와 사진을 통해 이경모가 광양을 넘어 대한민국 사진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조명하고자 한다. 향후 이경모를 기념하고 그가 남긴 카메라와 사진을 전시할 있는 독립공간을 마련하는데 작은 힘을 보탤 것이다.

나아가 카메라박물관 건립 광양이 전국 어디에도 없는 사진의 도시라는 특화된 문화콘텐츠를 선점할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 나갈 계획이다.

앞으로 이와 관련한 내용을 보도하고 창간 20주년 기념 부대행사로 치러지는광양사람, 사진가 이경모를 찾아서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사진기자가 현장에 가지 않고는 사진을 찍을 수도 없을 것이며 독자들에 대한 직무유기다” -이경모-

 

이경모는 1926 8 1 광양군청(현재 광양문화원)옆에서 양조장과 정미소를 하던 아버지 이문화씨와 어머니 허봉남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936 광양보통학교와 1945 광주서중을 졸업하고 스무살이던 1946년에 당시 호남신문 (현재 광주일보) 사진부장이 되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화가가 되고 싶어 했던 이경모가 사진의 길로 들어서게 광주서중에 입학할 당시 조부가 카메라를 사준 것이 동기가 됐다.

광주서중 4학년이던 열여덟살 당시 대한민국 최고의 미술전람회였던 23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서양화부문 입선을 했을 정도로 그림에 재능을 보였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고 싶어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화가의 꿈을 접었다. 대신 카메라를 이경모는 광양 구석구석을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그러던 여순사건이 일어난 1948 10 호남신문 사진부장 신분으로 처참한 도륙의 현장을 생생한 기록으로 남겼다.

지금 남아있는 흑백의 여순사건 사진들 대부분이 이경모가

여순사건 참상의 현장
여순사건 참상의 현장

 

사진들이다.

1950 8 국방부 정훈국 보도과 사진대 문관으로 6.25전쟁 종군취재도 하는 한국의 로버트 카파로 불러도 만큼 한국현대사의 아픈 역사의 현장을 기록으로 남긴 기록사진가다.

여기에 1952 11 현일영, 최계복, 임응식 당시 한국사진계의 거장들과 한국사진작가협회 공동발기인으로 참여, 한국사진작가협회를 발족하는 한국사진계 발전에 초석을 놓는

유당공원 연못
유당공원 연못

 

크게 기여했다.

이경모가 남긴 사진들은 대부분이 기록사진이어서 일부에서는 작품성을 운운하기도 하지만 이경모는 대한민국 사진의 역사에서 빼놓을 없는 자랑스러운 광양출신 인물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1945 8 15, 일본 패망소식과 함께 일제치하에서 벗어난 것을 기뻐하던 날에도 이경모는 현장에 있었고 1950 6.25전쟁이 일어나자 부산과 포항까지 가서 전장터의 모습과 피난민의 행렬등 전쟁의 참상을 카메라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