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방지축 귀농 일기[26] 추곡 수매
천방지축 귀농 일기[26] 추곡 수매
  • 광양뉴스
  • 승인 2019.11.15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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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식 시민기자

추곡 수매가 있는 날이다. 1년 농사를 평가 받는 날이라서 마을 어른들 대부분이 나오셔서 자신의‘나락 등급’을 궁금해 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수매 가격이 수 년 동안 변함이 없는데도 여기저기서 가격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작년하고 똑같것지 뭐”

크게 달라질게 없을 거라는 체념의 목소리와“긍깨잉, WTO가 뭔지 모리것는디 거그서 우리나라는 농업 선진국이 아니라고 스스로 개도국 지위를 포기 했담서. 그리 돼 불면 관세가 쬐끔만 붙던가 없어짐시로 외국 쌀들이 겁나게 싸게 들어와분다던디 어쯔까 이”

농업의 미래를 걱정 하는 목소리도 섞여 있다.

“뭔 대책이 안 있것능가”

“개 코구멍 같은 소리 하지 말게, 언제 농민들 생각하는 대책이란 게 있었간디, 삐겡이 눈물만큼 생색낸데끼 하다 말것지 뭐”

원망과 분노의 외침도 들려온다. 창연이 아우의 나락 앞에서 농산물품질관리원 직원(등급을 결정하는 사람))이 주인을 부른다.

“너무 많이 말랐어요. 내년부터는 잘 말리셔야 합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2등 표시가 가마니에 찍힌다. 옆에서 지켜보던 창연이 아우의 표정이 어두워지면서 담배엔 불이 붙여지고 있다.

금년, 나락의 품질은 대부분 1등과 2등이 나왔다. 예년 같으면‘특’이라는 등급이 거의 전부였는데....

만족 하지 못한 결과에 마을 주민들의 이마에 그어진 주름이 더 깊어 보인다.

“태풍을 3번 맞고, 물에 잠기고 쓰러져‘수발아’때문에 낮은 가격에 처분한 사람도 있는데, 이 정도 등급을 받은 것도 다행입니다”라며 위로의 말을 건네는 농업인 상담소장의 말이 허공에서 흩어져 귀에까지 배달되지 않는다.

모내기 한다며 시끌벅적 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탈곡한 나락의 수분 함량 조절(13~15%)을 위해 신작로 한 쪽 차선을 점거하고 몸을 말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나락 수매가 끝나면 술이나 한 잔 하자며 약속을 했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오늘 그 날이 왔다. 오늘 수매한 공공 비축미 수매 가격은 수확기(10~12월) 전국 평균 산지 쌀값을 기준으로 결정되며 수매 직후 40kg 한 포대당 3만원을 중간정산 하고 12월에 최종 정산 금액이 농가에 지급 된다고 한다.

검사원의 빠른 손놀림에 검사는 금방 끝이 났다.

등급이 찍힌 벼 가마니는 대기 하고 있던 대형차에 빠르게 몸을 숨기고 떠났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땀 흘려 수확한 농산물을 배웅 하는 날이 오기를 기다려 본다.

금년 농사는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