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칼럼] 아부하며 소통하자!
[소통칼럼] 아부하며 소통하자!
  • 광양뉴스
  • 승인 2020.01.03 20:11
  • 호수 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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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원 작가 소통 변화관리 전문가,‘소통병법’저자

아부는 남의 비위를 맞추어 알랑거림을 이르는 말이다. 이에 비해 아첨은 남의 환심을 사거나 잘 보이려고 알랑거리는 말이나 그 행위를 말한다. 아부가 단순히 남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라면 아첨은 사적으로 얻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남의 환심을 사거나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소통을 함에 있어서도 아첨을 하기보다는 아부로 소통하는 것이 좋다.

즉 사적으로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 아첨하기보다는 사익이나 특별한 목적을 두지 말고 단순히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어서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하는 것이 좋다.

아부로 소통하는 것은 지극히 수준 높은 차원의 소통이다. 아부는 지극히 타이밍의 예술이며 온전히 상대방의 기분을 들뜨게 하는 고단수의 소통이다. 아부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의 기분을 알아야 한다.

상대방이 감정적으로 기분이 다운된 상태에서 아부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올 수 있다. 그런 점에 비춰볼 때, 아부를 잘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심리 상태를 모두 읽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구나 아첨을 할 수는 있어도 아무나 아부를 할 수는 없다. 사실 사적으로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 아량을 떨거나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하기는 쉽다.

하지만 아부는 아첨과 성격이 다르다. 상대방에게 원하는 것이 없으면서 단순히 상대방이 기분 좋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거상불관, 위예불경, 임상불애, 오하이관지재(居上不寬, 爲禮不敬, 臨喪不哀, 吾何以觀之哉)라고 말한다.

이 말은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관대하지 않고 예를 행함이 공경스럽지 않고 상례에 임하여 애통하지 않는다면 예에서 벗어난 것이라는 말이다. 즉, 진심이 없이 표면적으로만 그럴듯하게 하는 것은 옳지 못함을 이르는 말이다.

상대방을 진심으로 존경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을 존경하는 척하는 것은 아첨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그 사람을 존경하는 마음이 우러나와 그 사람을 정성을 다해서 섬기는 것은 아부이다. 그러기에 아부의 소통이 소통의 최고 수준에 이르는 소통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부와 아첨도 소통하려는 상대방과의 관계가 상사와 부하 등의 수직적인 상하관계라면 그 성격이 다르게 해석된다.

신하 중에는 간신, 충신, 그리고 양신이 있다. 간신은 윗사람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고 자기의 사리사욕을 챙기기 위해 권력을 이용하는 자로 아첨을 하는 사람이다.

충신은 윗사람을 위해 헌신적으로 희생하지만 때로는 윗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윗사람을 궁지에 내몰기도 하는 사람이다. 이에 반해 양신은 윗사람이 명성을 얻게 하고 자기도 더불어서 명성을 얻는 사람이다.

아부와 아첨을 하지 않으면서 바른 정도를 추구함과 동시에 상호 승승의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양신이다.

흔히 집안이 어려우면 양처가 나오고 나라가 어지러우면 양신이 나온다고 말한다.

윗사람에게 충성하는 사람이 되는 것도 좋지만 충성은 때로는 윗사람을 비난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그런 점에 비춰 볼 때 윗사람과 사사건건 다투더라도 일이 커지기 전에 윗사람과 사전에 협의하고 윗사람의 잘못을 바로잡는 양신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첨을 받다 보면 아첨에 중독되게 된다. 또 한 조직 수장의 자리에 있으며 자기의 말 한마디에 의해서 일이 척척 진행되는 것에 중독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그러기에 자기가 자만해지거나 남의 의견을 잘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면 자기가 권력의 맛에 취했거나 아첨의 병에 걸린 것은 아닌지를 돌아봐야 한다.

논어에 군자는 위로 통달하여 인의에 밝고 소인은 아래로 통달하여 이익에 밝다는 말이 있는데, 아부를 하든 아첨을 하든 사익보다는 공익을 위하고 인과 의를 위해서 한다면 그 언행은 많은 사람들에게 각광을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