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방지축 귀농 일기] “제발 일 좀 줄입시다”
[천방지축 귀농 일기] “제발 일 좀 줄입시다”
  • 광양뉴스
  • 승인 2020.05.29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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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어둠이 길을 재촉 하는 시간이다.

비틀거리며 일어나 작업복을 찾는다.

아래집 성님이 아버지 경운기 나가는 소리에 몸을 일으켰지만 솜 뭉치같은 몸은 아직 잠에 취해 있어 한쪽 손을 벽에 붙이고 다리를 바지에 끼워 넣는다.

계란 후라이 두 개와 봉다리 커피로 아침을 대신하기 위해 식탁에 앉았다.

“고사리 다 끊고 옥곡 장날인디 고구마 순 사다가 심어야쓰것네 잉. 다른 사람들은 다 심었던디.”

마주 앉은 아내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일 좀 줄이며 삽시다. 소처럼 일만 하다 죽을려고 시골에 온 것도 아니구만.”

불만이 두껍게 묻어있는 아내의 말이 끝난 후 한참 동안 서로 말이 없다. 하고 싶은 말을 꾹꾹 삼키며 남아있는 커피를 들고 밖으로 나온다.

주방에서 ‘새참’을 준비하는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이름 모를 산새들의 아침노래까지 거칠고 투박하게 들리게 한다.

아내는 늘 농사의 규모를 줄이자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열심히 한다고 사는게 나아집디여? 경제적인 여유는 포기하고 시골살이를 하자고 했잖아요. 죽기야 허것소. 제발 일 좀 적게 하고 삽시다.”

수 십번을 더 들었던 말인데도 오늘은 가슴 시리게 다가온다.

진월쪽에 있는 감나무와 매실 밭, 고추밭을 무상 임대를 해서 관리를 하고 있다.

그 3곳을 포기하기로 약속 했는데 그만 하겠다는 말을 몇 달째 못 하고 있는 내가 얼마나 미웠으면 아침부터 저럴까 싶어 괜히 미안해진다.

오늘은 꼭 전화를 해야겠다.

그 땅 주인들이 조카와 가까운 후배라서 조심스럽고 망설여지지만.

“새참 다 준비 됐으면 언능 고사리 끊으러 가세”

여느 때와 다르게 아내를 부르는 목소리에 꿀을 듬뿍 발랐다.

이우식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