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동털개미의 창의적 융합 능력[4]
[기고] 고동털개미의 창의적 융합 능력[4]
  • 광양뉴스
  • 승인 2020.08.14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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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순심 숲해설가(숲마루)
고동털개미가 만든 진딧물 보호 터널, 놀랍고 경이롭다.

개미가 당분(감로)을 얻기 위해 진딧물을 사육한다는 것은 이제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 일반적인 상식이다. 그런데 녀석들이 천적으로부터 진딧물을 보호하기 위해 구조물까지 만들어 사육한다니 놀랍고 대단하다.

7월 말, 순천신흥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선생님 대상으로‘학교 숲 체험 컨설팅’이라는 다소 거창한 주제로 수업을 진행할 일이 있어 학교 답사를 갔다.

학교 뒤뜰 그늘이 짙게 드리운 곳에서 깨풀의 잎 몇 장에 흙 알갱이를 붙여 만든 구조물을 여러 개 발견했다. 구조물 내부와 주변을 돌아다니는 개미들로 보아 녀석들이 만든 것 같은데 무슨 용도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며칠 뒤, 순천대 교수팀을 따라 진도와 하조도로‘섬식생조사’에 동행했다가 억새 줄기 곳곳에서 개미들이 흙 알갱이로 만든 구조물 여러 개를 다시 목격했다.

알고 지내는 노린재, 나방 전문가 선생님이랑 그 얘기를 나누며 혹시, 장마기간 잦은 비로 땅 속이 물로 차자 궁여지책으로 임시 집을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추론도 해 봤지만 뭔가 깔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이 부족했다.

평상시의 나였다면, 때가 되면 답이 찾아오겠지 하고 그날을 기다렸을 텐데... 섬진강과 영산강 둑이 무너지는 걸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긴 장맛비와 바람에도 허물어지지 않는 흙 알갱이를 쌓아 만든 흙벽의 튼튼함의 비밀이 구조물의 용도보다 더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재작년 가을 숲 해설 공부 당시, 곤충 강의를 맡았던 선생님의 연락처를 구해 무작정 전화를 했다. 다행히 선생님의 지인 중에 개미 전문가가 있다며, 알아보고 친절하게 알려줘서 궁금증을 해결했다.

고동털개미가 만든 진딧물 보호 터널, 놀랍고 경이롭다.

흙벽은 고동털개미가 천적으로부터 진딧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터널이다. 녀석들은 터널의 안과 밖을 오가며 진딧물을 사육한다. 그런데 터널을 만드는 방법이 놀랍다. 진딧물이 내보내는 당분의 끈적임을 이용해 흙 알갱이를 쌓으면 균사가 빠르게 흙 알갱이에 퍼지고 연쇄적으로 미생물이 번식하면서 흙 알갱이들을 고정하면서 단단한 흙벽이 완성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흙벽은 긴 장마기간의 비바람에 버틸 만큼 강했다.

진딧물과의 동맹에서 얻은 잉여와 공간을 공유하는 균류와 미생물들과의 융합이 만들어낸 창의적인 구조물. 그 창의성만큼이나 구조물은 튼튼했다.

반면 인간은 어떤가? 요즘 키워드 중에 하나인‘융합’. 인간에게는 고동털개미와 같은 창의적 융합을 해낼 능력이나 준비가 되어 있는 걸까?

섬진강과 영산강 둑이 무너지고 인근 지역의 피해가 심각하게 발생하면서 여러 원인들이 제기됐다. 둑이 무너진 원인의 하나로 지목된‘파이핑 현상’을 보면서 종 우월성을 주장하는 인간의 허상이 또 한 번 드러난 기분이었다.

파이핑 현상은 물이 구조물의 약한 부분에 스며들어 구멍을 만들고 결국 구조물 전체를 무너뜨리는 현상이다.

둑이 터진 지점은 배수문이 있는 곳으로 콘크리트 구조물과 흙 구조물이 결합한 가장 약한 부분이란다.

불어난 강물에 짧은 시간 잠겨 있었다면 붕괴까지는 가지 않았겠지만, 이번에 긴 장마와 집중호우로 장기간 물에 잠겨 있었기 때문에 콘크리트 구조물과 흙 구조물의 결합이 약한 부분에 파이핑 현상이 장기간 발생하면서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 것이다. 그 결함을 매울 방법을 못 찾은 걸까, 아님 알면서도 비용 절감을 위해 안 한 걸까.

앞으로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이변으로 이번과 같은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한층 더 높아졌다. 안타깝게 우린 그런 미래를 위한 준비가 그다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미물 취급해온 곤충들은 고동털개미의 경우처럼 미래를 열기 위해 늘 제대로 치열하게 살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