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동의보감 소고
[기고] 동의보감 소고
  • 광양뉴스
  • 승인 2020.08.28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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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래 전 광양향교 전교

소설 동의보감을 읽고 드라마를 본지 십 수 년이 흘렀지만 요즘도 TV에서 방영하니 시청률이 높기 그지없다. 그러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 과연 사실과 일치한가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소설과 드라마는 허실과 진실이 존재하지만 작가는 예술성과 흥미를 위한 문학작품으로 만들다. 허준과 같은 심의에 관한 단상을 짚어보고자 허준박물관을 찾았다. 해설사로부터 내용을 들으며 드라마와 차이가 너무 커 허탈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허구의 3가지는 가족 관계·관직진출과 활동사항·스승신체 해부 내용이다. 허준의 본관은 양천이며 중종 32년(丁酉) 평안도 양천현 파능에서 평안도 용천 부사를 역임한 허론과 영광김씨 사이에서 서자로 태어났다.

부인은 안동 김씨이고, 형 옥(沃)과 동생 징이 있으며 아들 겸(謙)은 파주목사를 역임했다. 성장기와 스승에 대한 기록은 아직 찾지 못한 실정이지만 통일 후에는 가능할 것이다.

허준이 처음 기록에 나타난 것은 선조 원년(戊辰) 호남의 3걸(유희춘·김인후·최산두) 중 한사람인 미암(眉巖) 유희춘의 얼굴에 생긴 종기치료 때문이다. 허준을 신임한 미암은 허준을 이조판서 홍달에게 편지를 써 내의원에 추천했다. 그리고 전 함양군수 김려작‘한고관외사’에 허준은 양예수의 문인이라고 밝혔다.

다만 허준의 아버지는 적자와 서자를 구별하지 않고 교육을 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허준의 동생 허징도 서자 출신이면서 통정대부와 목사를 역임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많은 의학자를 배출했다는 것이 여러 기록에 있다.

의과시험(雜科)에 장원을 했다고 하나 의과시험합격자 명단인 의과방목에 허준의 이름이 등재되어 있지 않다. 의과시험에 1등으로 합격해 내의원 첩저가 되려면 20년이 소요된다. 다만 의술을 섭렵한 자세한 내용이 없는 실정이고 어의 양예수와 함께 십수 년 간 궁내에서 의직(醫職)을 함께 했다. 이처럼 허준은 의과합격과 유의태가 스승이라는 물증은 전혀 없는 실정이고 산읍(산청군)에 간 근거 또한 찾을 수가 없다.

스승 유의태 신체 해부에 관한 것은 소설일 뿐이다. 당시는 유교사회인지라 부모님이 물려준 신체는 머리칼 한 올이라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사회적 관습으로 보면 허실임이 분명하다. 작품 속 유의태는 유이태를 가공한 것임이 밝혀졌다.

소설석과 드라마 작가는 사실 검증이 없이 방영되고 연재되었으며 그 이름으로 3권의 소설이 발간됨으로서 유의태가 살신성인으로 묘사 되었는데 이것을 원용한 것이 아쉬운 점이다.

작품은 소설이기 때문에 추상과 가상을 절묘하게 처리해 흥미를 갖게 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유의태를 허준 약전에 처음 발표한 작가도 고증하지 못했던 자신의 오류를 인정했다. 뿐인가 드라마 작가 또한 종영된 후 유의태의 모델 인물은 유이태(劉以泰)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사실로 알고 있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당시 산청에서는 향토사학자에게 고증되지 않은 자료를 제공해 그 곳에서 태어나고 활동했던 사실도 설화도 없는 유의태를 의술활동지(금서회계)를 지어내 실존인물로 만들었다. 다만 유이태(劉以泰)는 효종 3년(壬辰)에 태어나 숙종 41년(乙未)에 생을 마감했으니 허준보다 115년 후의 실존자이다.

그는 숙종 36년(庚寅)년에 어의가 되었고 숙종의 환후를 고친 공로로 승록대부 안산군수를 제수 받은 의원이었다. 저서로는 마진편 외 7편의 주옥같은 의서를 남겼다. 또한 허준에 버금가는 의술로 경남서부지역과 호남동부 일원에 그 명성이 자자했다고 전한다. 그와 아울러 특출한 선생이 걸어온 길에 전설과 야담, 설화, 유적 등이 산청지역에 널리 분포돼 있다. 작가는 이것을 유의태에게 적용해 퓨전화 했던 것이다.

허준 기념사업은 서울시 강서구 허준로에 허준 박물관·허가바위·약초동산이 있다. 기념관은 3층으로 신축돼 있고 전시실은 2층이다.

이곳에는 허준기념실, 동의보감실, 약초약재실, 의약기실, 어린이체험실, 기획전시실로 구성돼 있으며, 허준에 대한 모든 것과 의업활동에 필요한 자재와 의약제조와 처방 등을 볼 수 있다. 3층은 옥상정원이며 연결된 동산에 약초원이 있다.

그리고 허가바위는 허준근린공원에 있는 석굴이며 동의보감을 완성한 곳이다. 동의보감을 집필하게 된 것은 국왕이 의서를 편찬토록 명함으로 이룩됐다. 한편 이 허가바위는 귀향지이기도 하거니와 마지막 하직한 곳이다.

동의보감의 특징은 첫째 병의 치료보다 예방에 중점을 두었고, 둘째 조선조 의학내용 중 핵심을 정리한 것, 셋째 뛰어난 편성법으로 목차 2권은 그 내용을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어 활용도가 뛰어나다. 총책 25권(목차2·내용23)이며, 내경6편·외경4편·잡편11·탕액 3편·침구(1, 침과 뜸)으로 역었다.

본서는 허준선생이 10여년의 세월동안 허가바위(石窟)에서 완성한 것이다. 세계적인 의서로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약력은 내의원 3품·광해군을 치료한 공으로 정 2품·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한 공으로 종 1품 승록대부였다.

그리고 선조의 병세를 회복한 공으로 정 1품 작위를 하사 받았나 권신들의 반대로 취소되었다. 사후 정 1품 보국승록대부 직위를 추서 받았다. 저서로는 동의보감 외 9책이 있다.

이곳은 유배를 보내면서 성문 밖 고향 근처로 보내도록 조치했기 때문에 유배 중 기거했으며 궁궐에 출입했음이 실록에 기술돼 있다. 선생의 묘는 한 세대 전에 발견되었고 파주시 진동면 구암로에 있으며 임진강전망대로부터 북향으로 가시거리에 있다. 허준에 관해 좀 더 정확한 사실을 모두가 기술할 때를 기대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