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향기] 엄마의 뒷모습
[생활의 향기] 엄마의 뒷모습
  • 광양뉴스
  • 승인 2020.09.11 17:12
  • 호수 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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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경
시인·소설가
유미경
시인·소설가

엄마를 차에 태우고 요양원으로 가는 날, 비가 내렸다. 차창 위로 흘러내리는 빗물 때문에 눈이 아려왔다. 뒤에 앉은 엄마는 조용했다. 엄마는 지금 어떤 시간 속에 머물고 계실까. 당신의 이름도 잊어버리고, 가족도 못 알아보는 엄마의 세계는 어떤 곳일까.

비를 맞고 서 있는 나무들이 시야를 가로막았다. 나는 최대한 천천히 차를 몰았다. 25분이면 가는 거리가 너무 짧게 느껴졌다.

요양원 입구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차를 멈추고 엄마를 돌아보았다. 엄마의 얼굴에는 불안함이 가득했다.

아침에 엄마는 무슨 낌새를 느꼈는지 평소보다 얌전했다. 기저귀에만 오줌을 묻히고, 속옷은 젖지도 않았다. 밥도 잘 받아먹고, 식사 후에는 바로 눕지 않고 앉아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눈이 깊고 슬퍼보였다. 이제 정말 엄마와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울렁거렸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과연 옳은 것일까. 대소변을 못 가리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야겠다고 결정한 일이 정말 잘한 것일까. 머리가 복잡해지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요양원에 갈 시간이 다가와서 나는 엄마를 다시 목욕시키고 엄마 이름이 쓰인 새 옷으로 갈아입혔다.

아버지는 지금 가면 언제 보냐면서 침대 위에서 울었다. 아버지는 앉아 있는 엄마 곁으로 다가와 손 한 번만 잡자고 했다. 아버지의 눈두덩은 벌겋게 부어 있었고 엄마의 얼굴은 무심했다.

65년을 함께 살면서 부부싸움도 하지 않고 살아왔는데, 치매로 인해 두 살 아이보다 인지능력이 떨어진 엄마를 보는 아버지의 마음을 어떨까. 나는 애써 아버지의 얼굴을 외면하고 엄마와 떠날 채비를 했다.

시동을 거는데 손이 떨렸다. 조금 가다가 나는 오른 손을 뒤로 내밀었다. 엄마가 내 손을 잡고 힘을 주었다. 엄마 손이 따뜻했다. 이제 다시 언제 엄마 손을 잡아볼까. 가슴에 알알한 통증이 밀려왔다. 나는 엄마 손을 잡은 내 손에 힘을 주었다. 심장이 터질듯 뛰면서 조여 왔다.

요양원에 도착하니까 엄마를 담당할 요양보호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를 휠체어에 태우고, 요양보호사가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나는 입구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런 나를 보고 요양보호사가 조금만 시간을 주겠다고 했다.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추고 말했다.

엄마,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엄마는 멍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또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요양보호사가 엄마가 탄 휠체어를 밀고 요양원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쏟아지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 눈물 속으로 아른거리는 엄마의 뒷모습에서 나는 멀지 않은 미래의 내 모습을 보았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엄마가 남기고 간 흔적들을 하나씩 정리했다. 엄마가 입던 옷과 이불들을 빨고 구석구석 닦았다. 예리한 칼날로 저미는 듯 살갗이 아려왔다.

나는 그런 나를 달랬다. 엄마는 내가 모시는 것보다 요양원에서 더 잘 케어를 할 것이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24시간 보살핌을 받을 것이고, 자연스레 그 생활에 익숙해질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나도 일상에 젖어들고, 엄마를 가끔씩은 잊어버리고 살게 될 것이다.

생살이 찢어져 쓰라린 이 마음도 무디어지게 될 것이다. 비 온 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뜨거운 햇볕을 쏟아내고 있는 저 태양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