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어버이의 집을 찾습니다
[기고] 어버이의 집을 찾습니다
  • 광양뉴스
  • 승인 2020.09.18 17:51
  • 호수 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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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진
건축 / 도시공학박사
노성진공간연구소장

1996년에 초판 되었지만 상당히 지난 후에 베스트셀러가 된 김정현의 소설 ‘아버지’가 생각난다. 신경숙의 소설 ‘어머니를 부탁해!’도 베스트셀러가 되었었다.

이 모두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이유를 한마디로 결론을 내릴 수 없지만 떠오르는 단어를 올려 보자면 사람에 대한 아련한 아픔과 귀재지심(貴在知心)이 오히려 이 시대 사람들의 가슴으로 파고들어 가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우리 곁에 엄연히 자리하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혈연의 일인가 보다.

소설‘아버지’는 문체나 구성도 좋지만 췌장암 선고를 받은 이후 가족들과 아버지로 만들어진 소사회가 주는 현실적 감정이입이 작용했을 것으로 본다.

또한 그렇게 현명하고 지혜롭던 어머니가 갑자기 집을 찾아오지 못하는 치매이야기를 다룬‘어머니를 부탁해!’라는 소설도 마찬가지의 소재로서, 언제까지 공기처럼 옆에 있어 줄 것 같은 어머니가 누구를 기억해 내지 못한다는 것이 그 가족의 문제만은 아닌 곧 이 사회가 어른으로서 사람의 존엄성에 대한 이해가 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고‘이 사회가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무엇인가의 커다란 힘에 떠밀려 참 중요시 여겼던 관심사가 무뎌지고 있는 시점에서 사람에 대해 무신경하게 살던 우리의 자화상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요즘 사회에서의 주거 구조는 어머니라고 하는 고령화 사회의 포용이나 이 시대 아버지들의 존재감을 높일만한 주거행태를 찾을 수 없는 또 다른 단면이 있다.

편리화와 고도화는 되었지만 현대주거의 공간에서 허용하지 않는 고령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공간, 철저하게 여성화 된 주거형태에서 내 몰린 아버지들의 퇴근 후 술, 밤 문화로 발전된 모습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적당한 노동을 통해 근육을 사용해야 하는 아버지처럼 사회가 제공해주는 콘텐츠를 자연스럽게 수용해 살아가는 어른들의 환경은 당연히 선택의 여지가 없게 만드는 사회의 영향이 클 것이다.

조선후기 실학자였던 서유구는 113권의 방대한 저서, 사람이 살아가는데 집과 관련한 생활서인‘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서 우리 고유성의 주거정서를 심도 깊이 기록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이운지(怡雲志)는 선비들의 문화, 취미생활, 주거공간, 여가생활, 실내장식 도구들, 문방도구, 서적의 구입과 보관, 손님초대 등 일반적으로 주거에서 품격을 유지하는 방법을 정리해주고 있다.

이것은 품격을 유지하는데 최소한 물리적 공간과 소품들의 확보를 의미하고 있다. 그러므로 집에 있어서 구성원들의 존재와 존엄성은 자연스럽게 발현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채’즉 우리의 주택배치에서‘안채’,‘사랑채’,‘별채’등의 용어는 각각의 성격과 용도, 위계에 맞는 별개와 통합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공간적 유용성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과 달리, 이 시대 TV에 몰입될 수밖에 없는 공간구조는 공간도 오상 없이 진행되는 폭력일 수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꼭 있어야 할 최소한의 가족적 유대를 위한 공간가치들이 경제라는 이름으로 생략되어지는 지금의 일반적인 주거 형태를 강조하면 주거가 아니라 숙박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과거에 비해 현재 도시유목민의 삶 속에서 가장 큰 변화는 시간과 행동을 통해 채워져야 할 구성원간의 인간적 뒷모습을 볼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식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라고 자식은 아버지의 어깨와 등을 보고 자란다’는 말은 스킨쉽이 어색한 우리로서는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의 허용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를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지금의 주거 공간 전형은 젊거나 여성성으로 무장되어 있으므로 설령 공간에서 서로의 존재를 익숙하게 인정해 줄 수 없게 되어 있다.

밥상머리 가족애나 교육은 기대할 수 없는 아침과 저녁 식사시간의 어긋남-시작의 관심과 마무리의 귀결 등, 공통관심사가 전혀 연결이 되지 않는 사회적 기능-아버지의 자리가 없는 거실에서 가족 구성원의 어색한 만남, 서구화 된 사적공간의 폐쇄성, 주거공간에서 입시교육 위력인‘무소음’절대주의 등, 존재와 존엄성의 고려가 배제된 공급형(供給形) 공간, 즉 누구를 막론하고 노동력과 경제력이 떨어진 노인(老人)가족 구성원은 수용되지 않는 주거환경과 여건은 참으로 쓸쓸하다.

어른의 존엄성을 상기시키는 데‘관계’와‘배려’가 씨앗이 되기 전에는 공간에서 재현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도 안다. 과거에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존속범죄는 제도가 아무리 그 빈도를 낮추려 해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범죄율은 더욱 상승되고 있는 결과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