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삶은 누구에게나 만만하지 않다 - 홍점알락나비 애벌레, 여섯번째 이야기 -
[기고] 삶은 누구에게나 만만하지 않다 - 홍점알락나비 애벌레, 여섯번째 이야기 -
  • 광양뉴스
  • 승인 2020.10.16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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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순심 숲해설가(숲마루)

추석연휴가 끝나고 집에 돌아온 날 아파트 울타리 작은 팽나무에 앉은 홍점알락나비를 만났다.

그런데 한쪽 날개가 심하게 찢어졌다. 그래도 나는 데는 문제없어 보였다. 팽나무 잎을 탐색하듯 옮겨 다니는 것이 알을 낳을 마땅한 자리를 찾는 암컷이 아닐까 싶다.

홍점알락나비는 팽나무나 풍게나무의 잎을 먹는 애벌레를 위해 팽나무나 풍게나무 잎에 알을 하나씩 낳는다.

녀석이 낳은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는 팽나무 잎이 남아있는 동안 먹이 활동을 하다가 추워지면 낙엽 밑으로 들어가 애벌레 상태로 월동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내년 봄에 깨어나 새로 난 어린 팽나무 잎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서 번데기를 만들고 무사히 우화해 멋진 나비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삶에 아무 변수도 없다면 말이다.

그런데 삶이란 것이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

작년 7월에 옥룡 솔밭섬 연못가에 있는 작은 팽나무에서 20여일에 걸쳐 홍점알락나비의 애벌레 시절부터 번데기, 우화까지 지켜본 경험이 있다.

그래서 올 봄 팽나무 잎이 돋을 때부터 팽나무마다 유심히 관찰하며 다녔다. 작년에 느낀 감동을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었다.

그러다 광영중앙교회 주차장에 있는 여러 그루의 팽나무에서 월동에 성공한 홍점알락나비 애벌레를 만났다.

4월 16일 3마리, 4월 18일 1마리, 4월 26일 1마리, 5월 4일에 또 1마리를 더해 총 6마리를 만났다. 반가웠다. 작년의 감동을 다시 한 번 마주할 생각에 설레었다.

그런데...... 단 한 마리의 애벌레도 나비가 되지 못했다. 아니다. 어쩜 3마리는 전혀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4월 16일, 처음 발견한 3마리는 10일을 관찰하며 변화를 살피던 중에 사라졌다. 숨어서 번데기를 만들고 내가 모르는 사이에 우화해서 저 멀리 날아갔을지도 모른다. 그랬기를 바란다.

4월 18일에 만난 1마리는 잘 먹지 않아 성장이 거의 멈춘 상태로 15일을 살다 죽었다.

월동하고 깨어나 먹이활동을 시작했을 때의 붉은 빛이 도는 몸 색깔 그대로 그렇게 떠났다.

4월 26일에 만난 1마리는 만난 지 14일 만에 번데기 만들 준비를 하다가 개미떼의 먹이가 됐다.

녀석이 원래 있던 나무를 떠나 바로 옆 나무로 힘들게 옮겨가서 잎 뒷면에 실로 꽁지를 붙이고 거꾸로 매달린 채 번데기를 만들지 못한 지 4일째 되는 날이었다.

비가 내려서 녀석을 하루 보지 못하고 다음 날 보러 갔더니 이미 개미들에게 먹히고 속이 텅 비어 있었다.

거꾸로 매달려 방어 능력이 전혀 없는 상태로 번데기를 만들지 못하는 날이 길어질수록 불안하더니만 결국 그렇게 됐다.

녀석은 번데기 만들기를 너무 서둘렀던 것일까. 녀석도 번데기 만들기가 처음이었을 테니 시기를 잘못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5월 4일에 만난 녀석은 엄청난 먹성으로 빠른 성장을 보였다. 그런데 며칠 거르고 만나러 갔더니 웬걸, 이번엔 나무가 잘리고 없다. 교회에서 예초 작업을 하면서 어린 팽나무를 잘라서 없애버렸다. 근처에 다른 팽나무들도 잘라서 녀석이 옮겨갈 팽나무도 없는데, 그 이후에 어떻게 됐을까. 더 이상 먹이를 구할 수 없음을 알고 때 이른 번데기 만들기라도 도전했을까. 그랬다면 성공했을까.

애벌레들이 그렇게 떠나고 속이 상해 한동안은 그곳을 피해 가야산을 오고 갔다.

생명 있는 존재들의 삶은 누구에게나 만만하지 않다. 진부한 말이지만 그래서 삶이 소중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눈에는 하찮아 보이는 한 마리 애벌레의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 아파트 울타리의 팽나무를 찾아온 홍점알락나비의 삶에 경의를 표한다. 알에서 애벌레, 번데기를 거쳐 우화에 성공하고 날개가 찢어지기까지 열심히 살아온 녹록하지 않았을 삶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