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무당벌레의 재발견
기고 - 무당벌레의 재발견
  • 광양뉴스
  • 승인 2020.11.13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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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순심
숲해설가(숲마루)

무당벌레의 재발견 - 연대를 통한 생존전략, 일곱 번째 이야기 -

 

어릴 적에 수천 마리도 넘는 엄청난 무당벌레가 우리 집에 몰려온 적이 있었다. 그때는 끔찍하고 짜증났다. 할머니가 모기약을 뿌리던 기억도 있다. 그런데 몇 년째 늦가을이면 떼로 찾아오던 무당벌레들이 어느 해부터 사라졌다. 그리고 그 기억도 잊혀졌다.

그런데 올가을 그 비밀이 풀렸다. 어릴 적 끔찍했던 기억과 달리 이번에는 무당벌레의 전략에 뭉클하다.

무당벌레과 곤충들이 겨울이면 낙엽이나 나무껍질 밑에서 삼삼오오 모여 월동하는 것을 종종 목격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그런데 놀랍게도 무당벌레과의 무당벌레와 남생이무당벌레는 수십, 수천 또는 수만 마리 이상이 무리를 지어 월동한다.

10월 말부터 11월초, 햇살 좋고 바람 없는 날 흩어져 살아가던 무당벌레들이 한 곳으로 모인다. 1차 집결지는 산꼭대기 큰 바위나 숲속 외딴집, 특히 멀리서도 눈에 잘 띄는 흰색 칠이 된 곳이다. 과거 우리 집이 바로 무당벌레의 1차 집결지였던 것이다.

며칠 동안 1차 집결지에서 기다리다 월동지로 함께 이동한다. 놀라운 건 뒤쳐진 무당벌레는 앞서간 무당벌레가 뿜어내는 냄새를 맡으며 무리가 이동한 곳으로 찾아간다는 것이다.

무당벌레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죽은 척하거나 다리 관절에서 심한 냄새가 나는 노란 물질을 흘리는데, 그것은 알칼로이드란 화학물이 많이 함유되어 있는 일종의 피다. 월동 직전의 무당벌레들은 다른 때보다 매우 강한 냄새를 내뿜는데, 그 냄새가 월동 여행의 길 안내 역할을 한다.

월동지는 바위틈이나 볕이 잘 드는 헛간처럼 기온 변화가 적고 바람을 잘 막아 줄 수 있는 곳이다.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해마다 같은 곳에서 월동을 한다.

그렇다면 무당벌레들은 왜 수십, 수천 또는 수만 마리 이상이 무리를 지어 월동할까? 일단 함께 있으면서 거대한 무리를 이루면 안전한 서식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추위도 피하고 천적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이듬해 봄에 수천에서 수만 마리 이상이 함께 겨울을 보내고 깨어났으니 멀리 갈 필요 없이 가까운 곳에서 마음에 드는 짝을 찾아 다음 세대를 이어갈 수 있다. 엄청난 노력과 에너지를 절약하는 셈이다.

작은 곤충 무당벌레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협력, 즉‘연대’의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그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서로를 끌어 모아야 한다. 그래서 가을이면 냄새를 풍기는 물질 알칼로이드 화학물을 많이 만들어 서로를 연결한다.

무당벌레가 극한 겨울을 이기고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진화의 방향은 서로를 연결하는 장치를 강화하여 연대를 이끌어 내는 방법이다. 또한 그 연대는 다음 세대를 이어가는 원동력으로 확장된다.

박해철의 <딱정벌레>를 읽으며 무당벌레를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됐다.

그 옛날 우리 집을 1차 집결지로 삼아 찾아들던 무당벌레들에게 괜스레 미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