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칼럼 - 식자우환(識字憂患) : 글자를 아는 것이 병이다
고전칼럼 - 식자우환(識字憂患) : 글자를 아는 것이 병이다
  • 광양뉴스
  • 승인 2021.06.11 17:07
  • 호수 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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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일
연관단지 대한시멘트 1공장

식자우환(識字憂患) : 글자를 아는 것이 병이다

삼국지(三國志) 위서에 보면 서서(徐庶)의 어머니 위(韋)부인 이 조조(曹操)의 심복인 정욱(程昱)의 위조편지에 속아서 한 말로 본래 여자식자우환(女子識字憂患) 이라고 했었다. 유비(劉備)가 신야성에서 아직 틀을 갖추지 못해 현인(賢人)을 구하고 있을 때 서서라는 사람이 유비의 참모(參謀) 노릇을 하고 있었다.

서서도 제갈량(諸葛亮) 버금가는 모사꾼이었는데 유비에게 작은 싸움에서 몇 번의 공을 세우자 조조 진영에서 서서를 자기편으로 끌어오려고 온갖 수작(酬酌)을 부린다.

서서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노모(老母) 한분만 계신데 노모를 둘째아들 서강(徐康)이 모시다가 젊은 나이에 죽고 아무도 시양(侍養) 할 사람이 없음을 안 조조는 서서의 어머니를 허창으로 불러 오게 하였다. 허창에 올라온 서서의 어머니에게 지극 한 예(禮)를 갖추며 회유(懷柔)를 하기 시작한다.

“내 듣건대 아드님 원직(서서의 자)은 천하의 귀재(鬼才)라 하는데 그처럼 훌륭한 인물이 역신 유비를 돕고 조정을 배반(背反)하고 있으니 이는 아름다운 옥이 진흙 속에 떨어진 격으로 애석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요”라고 하자, 서서의 어머니는 입을 열어 조조에게 한마디 묻는다.“대체 유비란 인물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본시 패군에서 자리를 짜서 생계를 유지하던 미천한 자로 외람되게도 황숙이라 자칭(自稱)하고 다니는 소인에 불과한 자입니다”

그러자 서서의 어머니는 정색을 하며 소리 높여 조조을 향하여 엄(嚴)하게 꾸짖는다.“어찌 나에게 거짓말이 심하냐. 내가 알기로는 중산정왕의 후예(後裔)이자 효경황제각하의 현손(玄孫)으로 몸을 굽혀 선비를 대접하기 겸손(謙遜)해서 천하의 모든 사람이 그 어진이름을 다 아는 터로 당세영웅 으로 알고 있다. 내 자식 놈이 현재 그를 섬기고 있다면 이는 주인을 바로 만났다고 하겠는데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하느냐.”

조조는 어이가 없어 화가나 당장 노파를 끌어내어 목을 베라 명(命)한다. 이에 당황한 정욱 은 조조 앞으로 뛰어가서 말린다.“지금 저 노파는 일부러 승상의 노여움을 사서 죽기를 구하는 것이니 그를 지금 죽이신다면 천하에 비난을 받을 것이며 저 노파는 스스로 덕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들 서서는 진짜 죽을 각오로 유비를 돕고 어머니의 원수를 갚으려 할 것이니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결국 조조는 죽이지 않고 별실(別室)로 보내 봉양(奉養)하도록 했다. 그 뒤 정욱은 쓸모 있는 물건이나 필요한 것을 시시 때때로 보내 줄때마다 편지를 동봉(同封)하여 정성을 다해서 모셨다. 이것이 계략(計略)인줄 모르고 편지를 받으면 고마움에 꼭 답장을 해주었다. 정욱은 매일 편지를 보고 노모의 필적(筆跡)을 연습을 하니 얼마 후에 한자 한자 정욱의 붓끝은 노모의 솜씨를 닮아갔다.

그 후 드디어 한 장의 거짓 편지를 쓰기에 성공 한다. 문장 이며 글씨체 누가 보아도 서서 모친의 글이라 속지 않을 사람이 없었다. 이 편지는 유비의 군막에 있는 서서에게 전달되었다.‘지금 네가 오지 않으면 내 목숨이 위태로우니 지금 잠시 와서 조조를 따르는 척하다 후일을 도모하자’는 내용인데 어머니의 필적은 물론이고 현재 가정 상황이 너무도 잘 맞아 의심(疑心)할 여지가 조금도 없었다. 효성이 지극한 서서는 편지를 읽자 현덕에게 가서 자기의 본색을 밝히며 어머니께 갈 것을 청한다. 현덕 역시 기가 막혀 울면서 자당(慈堂)께서 목숨이 위태로우시니 모자의 정은 천성지친(天性至親) 이라하니 난들 어찌 막을 수가 있겠소.

그리하여 서서가 허창에 도착하자 조조는 미소(微笑)를 머금으면서‘천하의 모사 서서도 우리의 계책을 벗어나지 못하는구나’하며 정욱을 내보내 서서를 영접하도록 했다. 조조와 면담(面談)을 마치고 어머니를 뵈려고 부리나케 찾아 달려갔다. 꿈에도 그리던 어머니를 보자 뜰아래 엎드려 목 놓아 울었다. 그를 보고 더 놀란 사람은 그 어머니였다.“네가 여기를 왜 왔느냐.”“저는 신야에서 유비를 모시고 있었는데 뜻밖에 어머님의 편지를 받고 부랴부랴 오는 길입니다.”“어미는 너에게 편지를 보내지 않았다.”어머니는 크게 노해서 아들을 꾸짖고는“다시는 꼴도 보기 싫으니 썩 물러가거라.”이렇듯 추상(秋霜)같은 꾸지람을 듣고 서서는 그대로 땅바닥에 엎드린 채 감히 고개를 들어 어머니를 쳐다보지도 못했다. 한참을 꾸짖은 어머니는“내가 여자로서 글자를 아는 것이 병폐가 되어 이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되었구나”하며 한탄 했다. 그 뒤 서서는 조조의 휘하에 있으면서도 한 개의 계책도 바치지 않았다.

너무 많이 알아 쓸데없는 근심이 생길 때나, 어줍잖은 지식으로 일을 망칠 때 인용해서 쓰기도 한다. 우리 속담에‘아는 것이 병이다’라는 말과도 뜻이 통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