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옥룡사지와 천년 동백숲’매력 살리는 가장 단순한 방법 [열 네번째 이야기]
[기고] ‘옥룡사지와 천년 동백숲’매력 살리는 가장 단순한 방법 [열 네번째 이야기]
  • 광양뉴스
  • 승인 2021.06.18 17:41
  • 호수 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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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순심 숲해설가(숲마루)

옥룡사지의 매력은 옥룡사 빈터와 그 빈터를 둥글게 둘러싼 1만 그루 쯤 된다는 동백나무로 이뤄진 동백숲의 조화다.

울창한 동백숲과 빈터의 여백이 주는 고즈넉함이 참 편안하다. 옥룡 사지의 고즈넉한 여백의 편안함 속에 멍 때리며 우두커니 앉아 있는 걸 종종 즐긴다.

이른 봄 옥룡사 빈터 바위에 앉아 서늘한 듯 부는 바람을 느끼며, 봄 햇살을 온몸으로 받고 앉아 있으면 나른함에 졸음이 쏟아지고 그대로 앉아서 새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존다. 그러면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다.

이른 여름엔 연못 앞 커다란 가시나무 그늘에 앉아 이름 모를 풀꽃들을 찾은 곤충들을 바라보며 또 그렇게 우두커니 앉아 있고, 그러다 노란 꾀꼬리의 날개짓에 미소 짓고. 가을엔 단풍드는 주변과 달리 초록빛 동백숲이 감싸는 빈터 바위에 앉아 깨끗한 파란 하늘을 바라보다 빈터 한켠에 서 있는 단풍드는 감나무를 바라보는 것도 좋다.

그런데 아직 겨울의 옥룡사지를 보지 못했다. 우두커니 서 있거나 앉아서 겨울의 고즈넉한 옥룡사 빈터를 즐기기에는 내가 추위를 너무 타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겨울에는 얇은 옷을 겹겹이 껴입고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겨울의 고즈넉한 여백을 즐기고 싶다.

현재 옥룡사지의 고즈넉한 여백이 주는 편안함이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 같은 안타까움이 있다.

사람들이 즐겨 찾는 옥룡사지다운 차별화된 전략이 뭘까? 광양시가 추진 중인 백계산 동백 숲을 국내 최대 규모의 동백 군락지로 확대 조성해 장기적으로 잎과, 꽃, 종자를 활용한 동백 자원화로 지역 생태관광을 이끌어 나가겠다는 것이 성공할 수 있을까.

도선국사 풍수사상 테마파크를 조성하고, 옥룡사지가 있는 백계산 곳곳에 고속도로 같은 넓은 산책로를 닦고, 산 곳곳의 기존 나무를 베고 동백숲을 확장하는 것. 그것도 부족해 인근 중흥사 일대까지 기존 숲을 없애고 동백숲을 조성하는 것. 그것이 과연 천 년의 숲이라고 불리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백숲과 옥룡사지를 다른 지역 동백숲과 차별화해서 살리는 방법이 될 수 있을까?

옥룡사지와 동백숲이 다른 사찰 숲과 차별화 될 수 있는 것이 뭘까? 도선국사와 그의 풍수지리사상 아닐까. 도선국사의 풍수지리사상은 중국의 풍수지리와 차별화되는 발상의 전환이 있다는 글을 공감하며 읽은 적이 있다.

중국의 풍수지리사상이 단순히 땅의 기운이 좋은 곳을 찾는 것이라면 도선국사의 풍수지리사상은 부족한 기운을 도와서 모자라는 것을 채우도록 하는 사상이라는 해석이었다.

천 년 전, 도선국사가 남은 생을 보낼 곳으로 찜한 백계산 자락에 옥룡사를 창건하면서 부족한 땅의 기운을 도와서 모자라는 것을 채울 요량으로 만든 비보림이 동백숲이다. 기존 숲을 동백숲으로 전환하거나 다른 목적으로 동백숲을 무조건 확장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백계산이 품고 있는 좋은 기운을 활성화하고 균형을 깨뜨리진 않는 선에서 모자라는 부분을 채울 자연스런 어우러짐이 있는 인공숲이 필요했던 것.

시간이 흘러 그 숲이 백계산과 온전히 하나로 어우러지면서 백계산의 일부로 성장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 바람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기에 남부지역의 사찰 동백숲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는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고, 2006년 제7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천 년의 숲 공존상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옥룡사지와 동백숲이 세상에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숲 관리에 투자가 늘고 그럴수록 가치를 인정받았던 원형은 사라지고 인간의 손질은 날로 과감해지니 안타깝다.

현재 동백숲은 토양침식으로 인한 영양 상태가 불량하고 종자 결실률이 낮다는데, 이 문제를 해결해가며 건강한 동백숲을 만드는데 전력하면서 백계산의 지나친 인위적 관리 대신 자연의 힘에 맡겨 도선국사가 바랐을 법한 자연림으로 성장해가도록 두는 것이 더 경쟁력이 있지 않을까.

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사찰 터와 그 주위를 둘러싼 건강한 천 년 동백숲 그리고 동백숲을 지나 꼬불꼬불 오솔길을 따라 원시림으로 성장해 가는 백계산을 걷는 여유와 즐거움.

천 년 전 도선국사가 걸으며 수행했을 법한 길을 따라 걸으며 천 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소통을 통한 사색을 하고 싶은 그런 숲이 되게 좀 내버려두면 안 될까.

사방을 파헤쳐 동백나무를 심어 의미를 퇴색시키는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

옥룡사지와 천 년 동백숲의 매력을 살리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가능한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두면서 터 안 나게 일하는 것. 그런데 그 단순한 방법이 행정가들에게는 가장 어렵다.

행정가들에게 숲에서 터 안 나게 일을 하라는 것은 일은 많이 하되 승진은 포기하라는 말로 들릴 수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