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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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양뉴스
  • 승인 2021.07.16 16:49
  • 호수 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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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임
광양YWCA 이사

벌써 10년이 훌쩍 지난 일이 되었다

벌써 10년이 훌쩍 지난 일이 되었다.

마흔이 다 되도록 결혼에 관심이 없어 어머니 속을 태우던 남동생이 결혼할 사람이 생겼다며 올케 될 사람과 함께 인사하러 찾아왔을 때 일이다.

함께 온 처자는 20대 중반에 조용조용한 말씨, 곱고 조신한 외모까지 갖춘 약사였는데 어떻게 사귀게 됐는지 묻자 장애인 단체에서 서로 봉사활동을 하다가 알게 되었고 만나다 보니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나름 혼자만의 유유자적한 생활을 즐기며 경쟁력(?) 없는 생활을 해 왔던 동생에게는 과분하다 싶은 아가씨였다.

식사를 마치고 다과를 나누면서 나는 두 사람에게 불쑥“자네들은 평강공주와 온달 중 누가 더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라고 물었다.

두 사람은“이 질문은 무슨 뜻?”하는 표정으로 잠깐 생각하더니 나름의 대답을 했는데 정리하자면 남동생은“평강공주처럼 괜찮은 여자한테 장가 잘 간다”는 뜻으로 알아들은 것 같고, 올케 될 사람은“바보 온달을 대장군으로 세운 평강공주처럼 내조를 잘해 달라”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나는“두 사람이 요즘 사회에서 출세의 기준이나 소위 조건 같은 것에 신경 안 쓰고 결혼을 결정한 것에 대해 우선 기분이 좋아. 그런데 두 사람이 결혼해 살면서 많은 부부들이 겪는, 양보할 수 없는 의견의 차이나 자존심이라는 감정의 갈등이 생기게 되면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궁금하다”고 얘기를 시작했다.

아직까지 우리사회에 존재하는 남성다움의 신화와 그 신화 속 주인공으로 살고 있는 적지 않은 남성들에게‘아내라는 여성의 잘남’은‘참을 수 없는 존재의 콤플렉스’일텐데 그런 갈등에 대해 생각해 봤는지, 예를 들면 남편보다 아내의 수입이 더 많고, 서로 의견의 다를 때 아내의 논리가 남편의 논리를 앞섰을 경우라든지, 사회적 지위나 인지도가 남편보다 아내가 더 높다든지.. 이런 경우 대개 남편(남자)들은 대놓고 내색은 못하다가 엉뚱한 곳(아내가 육아나 가사에 신경을 안 쓴다는 둥, 시댁이나 남편을 무시한다는 둥)에서 자격지심이라는 부정적 감정이 발동해서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혹시 그런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 평강공주와 온달 장군의 예를 들어 얘기를 이끌어 내봤다.

모든 사람에게 바보라고 놀림을 받던 온달이 한 나라의 대장군이 될 때까지는 얼마나 많은 것을 참고 견디며 혹독한 과정을 거쳤을지.. 그런 남편을 곁에서 격려하고 지지하며 때로는 단호하게 채근했을 평강공주가 남편인 온달의 입장에서는 어떤 존재였을지.. (결국은 온달이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지만)

그런 아내에게 온달은 요즘 남편들처럼 자격지심이나 자존심이 상한다고 느끼는 경우가 없었을지... (자존감과는 다른)

물론 시대적 배경과 가족구조의 관점이 다를 수도 있지만 잘난 아내에 대한 남편들의 자신도 모르는 자격지심이 내 동생이라고 다르겠냐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내 질문의 뜻을 설명하자 두 사람은“아하~”하는 표정으로 마주 보며 웃었다.

(다들 짐작하시겠지만 두 사람도 눈에 씌웠던 콩깍지 벗겨지니까 지지고 볶으면서 고군분투하며 살고 있습니다.)

온달 안의 인물을 알아보고 그것을 작품으로 이끌어 낸 평강공주는 물론 대단한 사람이지만, 남들도 자신도 바보인 줄만 알고 살았던 스스로를 다듬고 빚어서 작품으로 우뚝 선 온달은 더 대단한 사람 아닐까?

사람을 볼 때 어떤 관점으로 보는지, 우리들의 생각은 어떤 색깔일까요?

그저 어릴 적 읽고 지났던 동화 속 얘기가 요즘 세대의 시각에서는 어떻게 비쳐질지 궁금해서 요즘도 이따금 아동, 청소년들과 비슷한 얘기를 나눠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