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농협중앙회 신용대표이사
故이덕재 조합장님 영전에 바칩니다
이덕재 전 광양농협 조합장님을 농협운동의 동지로 만나 40여년 함께 해왔습니다.
집안의 어른처럼 늘 든든했던 조합장님을 잃었으매, 님의 영전에 머리 숙여 간절한 기도로 보내드리고자 합니다.
조합장님은 동트자마자 관내 마을을 돌아다니며 고령의 조합원에게 밤새 무슨 일이 있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고 출근하는 진정한 농협 조합장이었습니다. 조합원이 힘든 일을 만나면 당신의 일인 양 나서서 해결하셨습니다.
옳지 못한 일을 보면 불같은 성격에 소소한 마찰도 있었지만, 몇 시간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웃음으로 어루만져 주는 대인이기도 하셨습니다.
소생의 조사부장 시절, 쌀 수매가를 농협이 조사해서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했습니다.
조합장님께서는 수매가 인상안이 국회에서 관철되도록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밤낮없이 노력하셨습니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때는 쌀 수입개방 반대 운동에 앞장서셨는데, 서대문 농협중앙회 강당에서 밤샘토론과 함께 투쟁하시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소생이 전남농협 본부장을 맡게 되었을 때 전남의 도금고는 상공인이 주로 거래하는 광주은행이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조합장님은 농도 전남의 도금고를 농협으로 이관 할 것을 도청에 건의하는 대표자로 활동했으며, 이듬해에 농협이 도금고를 유치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셨습니다.
조합장님께서 농협중앙회 이사 등 모든 자리를 내려놓은 뒤 서울에서 월 1회 만나는 모임에 참석할 때는 늘 토속막걸리 세 병을 손수 들고 오셔서 함께 즐기며 정담을 나누었습니다.
일본의 지인 조합장으로부터“이덕재 조합장이 가져온 막걸리는 맛이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고, 소생은 일본에 갈 때 늘 그 막걸리를 지참해 선물하곤 하였습니다.
조합장님이 와병으로 서울 모임에 못 오시면서 안부를 여쭙고자 전화를 드리면 전화기의 시그널 음악이 한결 같이 들렸습니다.“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엔 아랫마을 하동사람 윗마을 구례사람 닷새마다 어우러져 장을 펼치네.”서로 만나지 못하고 말은 못해도 우리의 뜻은 한결같다는 뜻이었겠지요?
한 달 전 곡성에서 미술 전시회를 할 때, 서울에서 내려오신 한호선 전 회장님과 함께 조합장님을 문병하였습니다. 장기간의 병상생활에 몸을 일으키기 어려운 상태임에도 우리 모두와 눈을 마주치고 인자한 표정을 지으시니, 우리는 반가움보다도 한없이 슬프고 안타까운 심정이었습니다. 헤어지면서 다시 오겠다 약속하고 하이파이브도 하였으나 30여 일 만에 부음을 듣고 인생 무상함을 절실하게 느낍니다. 조합장님의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노래 가사를 더는 들을 수 없게 되어 못내 아쉽기도 합니다.
이덕재 조합장님! 농협의 후배들 모두는 농업인들과 함께하는 100년 농협을 만들기 위해 더욱 열심히 노력할 것입니다. 조합장님의 헌신적인 협동조합운동이 헛되지 않도록, 후배 농협인들이 농업 발전과 농민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 힘쓰고 농정개혁과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선진농협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이제 농민, 농업, 농촌 그리고 농업협동조합의 어려운 문제는 훌륭한 후배들에게 다 맡기시고 부디 평안히 영면하시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