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향기
생활의 향기
  • 광양뉴스
  • 승인 2021.08.13 16:58
  • 호수 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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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경
시인•소설가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나는 어릴 때 수영선수였다. 길 하나를 건너면 모래사장과 바다가 이어지는 곳에 살았던 나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수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학교에서는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 전교생을 바다 속으로 들어가게 하여, 목표지점까지 갔다 오게 하였고, 1~3등에 드는 아이들을 한 달 동안 훈련시켜서, 개학하기 직전에 개최되는 영일군 수영대회에 참가시켰다.

난 4학년 때부터 학교대표가 되었다. 평영이 주 종목이었지만, 선수들이 적어서 배영과 자유형에도 출전했다.

당시에 나는 아이들보다 월등하게 키가 컸고, 손발도 커서 수영하기에 아주 좋은 체격을 가진 유망주였다.

하지만 6학년 때 수영을 그만두게 되었다. 운동을 하면 골병이 든다는 엄마의 반대를 꺾을 힘이 없었다.

그해 여름, 4~6학년 전체에서 2등과 5미터 이상 차이 나게 1등을 한 나는 다시 수영선수가 되었다. 하지만 엄마가 수영을 못하게 하셨다.

아이들이 바다에서 수영연습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보내달라고 울면서 졸랐고, 선생님께서도 날마다 찾아왔지만, 엄마는 허락하지 않으셨다.

대회에만 참가하게 해달라고 대회전날까지 오셔서 부탁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에 엄마는 마지못해 승낙 하셨고, 그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은 수영은 하지 말라고 못을 박았다.

하지만 한 달 동안 연습 한 번 안 한 나는 3등을 했고, 1~2등만 나갈 수 있는 도 대회에 참가할 자격을 잃어버렸다. 1등을 한 아이는 선발전을 할 때 2등을 했던 우리학교 아이였다.

속이 상한 나는 중학교에 가면 꼭 수영을 할 것이라고 다짐했지만, 내가 다녔던 중학교엔 수영반이 없었고, 나는 수영 선수의 꿈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한 때 아시아의 물개로 이름을 날렸던 최윤희 선수가 텔레비전에 나왔을 때, 엄마가 말씀하신 적이 있다.“내가 반대 안했으면 니도 저렇게 됐을 텐데…”

그때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엄마의 반대 때문이 아니라 내 자신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좀 더 꿈에 대해 간절했다면 엄마의 반대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다른 운동과는 달리 수영에는 유난히 관심이 간다.

텔레비전에서 수영 이야기가 나오면 가슴이 뛴다.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세계인들을 놀라게 한 황선우 선수의 경기 모습을 빠지지 않고 보면서, 내가 출전한 것처럼 심장이 뛰었다.

수영장에 뛰어들어 물살을 가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경기 때마다 기록을 갱신하는 그를 보면서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운동은 타고난 것도 중요하지만 얼마만큼 노력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무엇보다 자신을 이겨야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을 넘어서야 한다. 다른 사람을 이기는 것은 쉽다. 하지만 자신을 이기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이번 도쿄올림픽 선수들은 그 어떤 때보다 힘겨운 싸움을 했을 것이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한 불안한 상황 속에서 자신과의 싸움은 참기 힘든 고통이었을 것이다. 관중도 없는 공간에서 스스로를 극복하는 일은 죽음과 맞서는 일이었을 것이다.

특히 여자배구 선수들의 경기를 볼 때는 눈물이 났다.

그들은 경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걸고 공을 치고 막았던 것이다. 세계 5강인 일본을 물리치고, 세계 4강인 터키를 이기고, 4강에 진출했다. 결코 이길 것 같지 않았던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것은 모두 그들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굳건한 의지이다. 간절한 바람과 할 수 있다는 믿음의 소산이다. 메달을 떠나서 올림픽에 참가해서 경기를 치룬 것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를 받아야 한다.

그들이 흘린 땀에 아낌없는 격려와 사랑을 보내야 한다. 코로나 블루에 빠져있는 국민들에게 기쁨과 환희를 선사한 그들에게 사랑의 매달을 걸어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