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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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양뉴스
  • 승인 2021.08.27 17:33
  • 호수 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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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원 작가
노자의 소통법 저자

소통을 잘해야 천하를 품는다 ⑤ 소통의 고수는 후흑의 고수

소통으로 천하를 품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눈을 너무 의식하지 말아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말과 행동을 자기의 속내와는 반대로 해야 한다. 있는 그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많은 사람이 자기 속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남과 더불어 조화를 이루면서 상생해야 하기에 참고 견딘다.

이와 같은 일련의 생활 태도가‘후흑’이다.

‘후흑’은 얼굴이 두껍고 마음이 검다는 의미로 얼굴에 철판을 깔고 마음에 흑심을 갖춘다는 뜻이다.

후흑의 대가가 되기 위해서는 처음에는 낯빛을 두텁게 하고 마음에 흑심을 품어야 한다.

여기서 낯빛이 두텁다는 것은 자기의 감정이 얼굴에 표출되지 않도록 포커페이스를 잘하고, 마음에 흑심을 품고 있어도 얼굴에 표출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전략을 세운다는 것은 후흑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구사할 것인가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노자가 도덕경 36장에서 말했듯이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를 자유롭게 놓아두어야 하고, 상대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기 위해서는 먼저 높이 올라가도록 하며, 상대의 것을 빼앗기 위해서는 먼저 주라고 하는 미명(微明) 역시 후흑이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가장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인다고 했듯이 현명한 사람이 바보같이 행동하는 것 또한 후흑이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가장하여 자신이 얻고자 하는 바를 얻는 가치부전이나 자신의 재능이나 명성을 드러내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상황이 도래할 때까지 참고 기다린다는 도광양희 또한 후흑의 전략이다.

일부러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물이 흐르듯이 자연적으로 생활해야 함을 중시하는 사람은 낯빛이 두텁고 마음에 흑심을 품고 있는 사람을 극도로 혐오한다.

그래서 후흑학이 처음 나왔을 때 많은 유학자가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도리와 세상이 돌아가는 순리에 어긋나는 학문이라면서 이를 배척했다.

그런데 노자의 도덕경이나 삼국지, 그리고 손자병법이나 한비자 등에 나오는 주된 내용에는 공통적으로 후흑의 전략이 곳곳에 담겨 있다.

제갈공명의 공성계도 일련의 후흑이다. 또 손빈이 방연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 돼지우리에서 돼지와 같은 생활을 하고, 실성한 사람처럼 정신병자 역할을 했던 것도 후흑이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시정잡배들의 가랑이 밑을 기어들어갔던 한신 장군 역시 후흑의 대가이다.

후흑은 자기의 본심과는 다른 태도를 보이는 것이 핵심이다.

한편, 노자는 도덕경에서 진실한 말은 꾸밈이 없고 꾸미는 말에는 믿음이 없다고 말했다.

또 선한 사람은 말수가 적고 말이 많은 사람은 선하지 않는다고 말을 하면서 말을 많이 하면 근심 걱정이 많아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도를 터득한 사람은 진실하고 자연의 이치에 따라서 말과 행동을 하기 때문에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고 했다.

주역에서는 꾸밈이 없는 걸음으로 나서면 허물이 없다고 말한다. 또 한편으로는 꾸밈 속에서 삶의 길이 열린다고 말한다. 중국 고전을 보면 꾸임이 없어야 한다는 말과 꾸며야 한다는 말이 서로 병존한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꾸밈이 없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진솔하게 말하고 꾸며야 하는 상황에서는 꾸며야 한다.

중국 고전을 들여다보면 그런 처세술을 구사한 사람들이 천하를 품은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