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 마음의 색안경
[사람과 삶] 마음의 색안경
  • 광양뉴스
  • 승인 2021.10.29 16:34
  • 호수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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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임 광양YWCA 이사
김양임 광양YWCA 이사

어릴 적 목격했던 어른들의 성희롱 장면(5월 31일 자 칼럼), 그 이후 내 마음에 씌워진 색안경은 살아오면서 여러 사람을 당혹케 만들었는데 평소 정겹게 지내던 동네 할아버지 의 사소한 행동에도 무심결에 어깨를 움츠리며 경계를 하는 통에 이런 일까지 있었다.

동네에서 점잖고 학식이 높은데다 늘 웃는 얼굴이 정다웠던 그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만나 면 어깨를 토닥이거나 등을 쓰다듬으시는데 어느 날 길에서 만나 인사를 드리고 평소처럼 간단한 대화를 나누던 중“왜 그렇게 할애비를 겁내냐? 나는 너희들이 그냥 사랑옵다”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내가 전에 없이 할아버지의 손을 피하면서 몸을 움츠린다는 것이다. 스스럼없이 귀여워하 는 손짓을 거부하고 겁내는 것처럼 보여서 할아버지는 그것이 다소 서운하셨나 보다. (나 역시 민망하고 죄송했던..)

교회에서 청년회 활동을 할 때, 군대에 간 동료들에게 매주 교회 소식지를 보내는 일을 했다. 그 무렵 함께 활동하던 후배와 약간 마음 상한 일이 있었고 오해를 풀기 위해 편지를 보낸 적이 있었는데 군 복무 중이던 동료가 휴가 나왔다가 우연히 동생 방에서 그 편지를 봤나보다.(후배와 동료는 형제 간)

귀대한 후 그 편지 내용을 거론하면서 편지가 오기 시작하는데 점점 지금까지와는 다른 색깔을 띠고 다가오는 게 아닌가?“이것 봐라?”하는 생각이 들면서“너는 이제 교회 소식지도 없어!”하고 끊어 버렸다.

휴가 와서 교회에서 만나도 눈도 안 맞추고 쌀쌀맞게시리 내 할 일만 하다가 쌩하니 집에 와 버리는 등 만행을 저질렀는데...

지금 생각하면 친구야, 미안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내가 청소년들을 지도하는 위치에 있을 때에는 오빠들 틈에서 어느 정도 능구렁이가 되어 있을 때라 남학생들의 짖궂은 호기심에도 비교적 담담하게 넘어갈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거울로 치마 속을 훔쳐보는 녀석에게는“뭐가 보이냐? 속옷 다 입었어. 임마~!”하고 김빼기 작전을 쓰기도 했고 서리가 낀 유리창에 발가벗은 여자를 그려 놓는 녀석한테도 철저히 김 빼기 작전으로 대응했다.

“누구 작품이냐? 그 여자 글래머네. 근데 말야, 너희나 나나 엄마 젖 먹고 자랐으니까 엄마가 최초의 여자 아니냐? 그런 여자 몸을 공개적인 곳에 저렇게 발가벗겨 놓으면 되것 냐?”

엄마를 거론한 것은 절대 모욕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었고 나 역시 엄마가 되기 전이라 내 어머니를 함께 거론하기도 했다.

세월이 지나 사춘기의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사뭇 어른처럼 나를 내려다보던 아들(지금은 한 여자의 남편인), 내 생명으로 연결된 소중한 남자, 그 아들을 향해 나는 상당히 심각하게 말했다. 성희롱, 성폭력이라는 단어는 강 건너 불이 아니고 우리의 일이라고, 나는 아들만 두었고 또 늙어가는 여자이니 얼핏 보아 일차적인 피해 대상에서 벗어나 있는 듯하지만 그것을 우리의 일로 친다고.

이 세상의 행복과 불행을 나눌 사람들이 어찌 한둘이랴만, 가장 중요한 건 그들이 아직은 미지의 존재인 어떤 집안의 딸들이고, 엄마도 옛날에는 젊은 여자였고 그 이전에는 어린 여자아이였다고..

사람 사이의 존중을 늘상 얘기는 했는데 뭔 말인지 알아들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