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호랑나비의 환생, 두색맵시벌…애도와 축복 사이 [열 아홉번째 이야기]
[기고] 호랑나비의 환생, 두색맵시벌…애도와 축복 사이 [열 아홉번째 이야기]
  • 광양뉴스
  • 승인 2021.11.19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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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순심 숲해설가(숲마루)

해가 지고 얼마 안 되어 어둠이 살짝 내리기 시작할 무렵, 집에 들어와 불을 켠다. 습관처럼 샬레에 있는 호랑나비 번데기를 들여다본다. 샬레 안에서 뭔가 움직인다. 호랑나비는 아니다. 이럴 수가! 기생곤충, 두색맵시벌이다. 우리 집에 온지 28일 만에 호랑나비 애벌레는 호랑나비의 삶을 완성하는 대신 두색맵시벌로 환생했다.

호랑나비 애벌레 번데기의 가슴 부위에 구멍이 뻥 뚫리고 속은 텅 비었다. 구멍의 동그란 테두리는 불로 태운 자리처럼 까맣다.

두색맵시벌은 번데기를 녹여내고 나온다더니 녀석이 번데기를 녹이는데 사용한 액체와 함께 바닥에 떨어진 초록 번데기 일부는 샬레 바닥에 눌러 붙어 있다.

죽음과 탄생이 하나로 이어진 순간. 애도와 축복 사이에 선 나는 그저 애매하고 묘한 감정이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 묘한 감정이 깔끔이 정리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얼떨결에 강제 입주시킨 생명은 두색맵시벌이 아니라 호랑나비 애벌레였으니..

호랑나비 애벌레의 입주는 날씨 좋은 가을날이었다. 9월 마지막 주 토요일 시민과 함께하는 <숲마루 산책길>이 있던 이른 아침, 가야산 자락 작은 언덕 하나를 넘어 와우 공원으로 가는 산길에서 4령 된 호랑나비 애벌레를 만났다. 초피나무 잎으로 건드려도 꿈쩍도 안 했다.

한 해 의도치 않게 다양한 곤충을 기르다보니 알, 애벌레, 번데기 상태로 기생당한 녀석들을 여러 차례 목격하면서 공포 영화 몇 편 경험해서인지 요 녀석도 기생당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기생당한 것인지 허물을 벗으려는 것이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한참을 지켜봤지만 변화는 없고, 숲 해설은 진행해야 하니 하염없이 결과를 기다릴 수 없어 일단 지나쳤다.

수업이 끝나고, 와우 공원에서 사초과, 벼과 풀들이랑 눈 좀 맞추며 놀다가 다시 산을 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보니 녀석이 몸을 뒤틀고 있었다. 기생 곤충이 녀석의 몸을 뚫고 나오려는 걸까? 헌옷 벗고 한 살 더 먹으려는 걸까? 한참 서서 기다리다보니 지치고.

“안 되겠다. 너, 나 따라 우리 집 가자.”

녀석을 데리고 산길을 부지런히 걸어 산을 내려와서 골목길을 걷는데, 이런 녀석이 헌옷을 찢고 머리를 쑥 내밀었다. 놀라서 어느 집 대문 앞에 쪼그려 앉았는데 이상한 냄새가 났다. 하필 급하게 쪼그려 앉은 곳이 음식물쓰레기통 앞이었다.

어쨌든 녀석은 어느 집 대문 앞 냄새나는 음식물쓰레기통 옆에서 새똥 같은 보호색을 띤 헌옷을 안전하게 벗고 초록색 몸으로 변신하며 당당하게 한 살을 더 먹고 5령이 됐다. 30분쯤 지나 우리 아파트에 도착할 무렵에는 기력을 회복하고 제 허물을 맛있게 먹고 휴식에 들어갔다. 번데기를 만들고 우화하는 것까지 지켜봐야 기생 유무를 확인하겠지만 일단 아직 호랑나비의 삶이 이어지고 있음에 안심했다.

우리 집에 입주한지 8일 만인 10월 2일 새벽, 흠집 하나 없는 완전한 초록색 번데기를 만들었다. 그런데 녀석이 번데기 만들기 전 금식에 들어가면서 제법 많은 초록 설사를 했다. 여름에 설사를 한 뒤 번데기를 만든 으름큰나방 애벌레의 번데기를 뚫고 나온 기생파리 애벌레 5마리를 목격한 적이 있어 왠지 불안한 마음이 자리를 잡았다.

호랑나비는 번데기로 월동하는데, 요 녀석이 월동할 번데기인지 뒤늦은 우화를 할 것인지 알 수가 없어 수시로 변화를 지켜봤다.

번데기 21일째인 10월 말,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녀석이 깨어났다. 며칠 전부터 번데기 색에 변화가 보여 신경을 집중하고 있어서 집에 들면 녀석의 번데기를 제일 먼저 확인했다.

결국 녀석은 호랑나비로 태어났지만 호랑나비의 삶을 완성하지 못하고 두색맵시벌로 환생했다. 죽음을 애도해야 하는 건지 탄생을 축복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당황스런 순간, 애매하고 묘한 감정 상태.

그날 저녁 두색맵시벌을 보내주러 외출을 했다. 혹시 다음날 아침 녀석의 죽음과 마주하는 것이 아닐까 불안해서 밤 외출의 귀찮음을 선택했다. 두 생명 중에 하나라도 살아있는 모습으로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