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칼럼] 인과응보(因果應報) : 원인과 결과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
[고전칼럼] 인과응보(因果應報) : 원인과 결과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
  • 광양뉴스
  • 승인 2022.03.18 17:53
  • 호수 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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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일
연관단지 대한시멘트 1공장

어떤 일에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노력하면 성과가 좋게 나타나고 씨를 뿌려야 수확을 얻을 수 있으며 그물을 치지 않고는 고기를 잡을 수 없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에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재미있는 이야기 중에 ‘인과응보’를 잘 나타내 주는 이야기가 있다. 조선 철종(哲宗) 때 이야기다.

경상도 상주 땅에 서씨(徐氏) 성을 가진 농부가 살고 있었는데 집은 가난해도 양심이 바르고 심성이 착해 인근 사람들이 서선달이라고 불렀다.

본래 선달(先達)은 과거에 급제는 했으나 아직 벼슬에 나가지 않은 사람을 이르는 호칭이지만 심성이 고와 그렇게 높여 불렀다.

어느 해 봄에 흉년으로 매우 곤궁한 보릿고개를 맞이하게 되었는데 생각 끝에 부산에 쌀가게에 나가있는 아들을 찾아갔다. 아들이 이 쌀가게에서 신임을 얻어 장부를 담당하고 있었다.

효자 아들은 가난하여 보릿고개로 어려운 집안 사정을 알기 때문에 1년 치를 가불(假拂)하여 아버지께 엽전 한 뭉치를 드렸다. 말하자면 선 세경을 당겨 받은 셈이다.

서 선달은 500리길을 걸어 고향으로 가는 중간에 어느 시정에서 쉬고, 고개를 넘다가 그만 돈뭉치가 빠진 줄도 모르고 가고 있었다.

가다보니 돈이 없어진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30리 길을 갔을 때였다. 100냥이면 큰돈이기도 하거니와 아들의 1년분의 품삯이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이때 반대쪽으로 가던 한 노인이 하인과 함께 시정에서 잠시 쉬려 하는데 이 돈 꾸러미를 발견 하였다. 세어보니 100냥이 되는 제법 큰돈이었다. 다행이 이 노인은 착한 사람이었다.

횡재를 했다고 좋아하는 하인에게 타이르듯 잃어버린 사람은 반드시 올 것이다 하면서 가던 길을 멈추고 기다리고 있었다.

과연 얼마 후 서 선달이 얼굴이 흙빛이 되어 나타났다. 두말없이 서 선달에게 돌아갔고 간단한 인사만 나눈 채 서로 제 갈 길을 갔다. 서 선달이 어느 강가에 도착했을 때 건너편에서 오던 배가 그만 뒤집히면서 배에 탔던 사람들이 모두 물에 빠지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사공은 쉽게 헤엄을 쳐서 나왔지만 배에 함께 승선했던 젊은이 한사람이 소리만 칠뿐 구조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서 선달은 수영을 하지 못했고 발만 동동 구르다가 저 젊은이를 구해주는 사람에게 돈 100냥을 주겠노라고 소리쳤다.

서 선달은 돈이 아까웠지만 사람을 먼저 살려놓고 봐야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무리 중에 한 장정이 뛰어들어 젊은이를 무사히 구해냈다. 서 선달은 아깝지만 약속대로 가지고 있던 100냥을 구해준 장정에게 줄 수밖에 없었다.

이 광경을 본 젊은이는 선달에게 말하기를 “정말 고맙습니다. 어르신 덕분에 내가 목숨을 구했으니 저희 집을 오시면 제가 아버지께 말씀드려 반드시 갚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서 선달은 사례를 받고자 한일은 아니지만 자기 사정이 딱한지라 동행해서 안동으로 갔다.

젊은이를 따라 고향에 가보니 그는 권씨(權氏) 성을 가진 안동의 큰 부자였다. 소년이 들어가 아버지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더니 권 부자는 버선발로 뛰어나왔는데 그는 전에 본 듯한 구면(舊面) 이었다. 바로 어제 돈 꾸러미를 찾아준 노인이었던 것이다.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돈을 내주어 7대 독자 아들을 구해 주시다니 당신은 진정한 의인이시오”. “아닙니다. 댁의 아들은 당신이 살려 내신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만약 어르신이 돈을 돌려주지 않았다면 내가 어떻게 살릴 수 있었겠습니까”. “겸손의 말씀이십니다.”

안동의 권 부자는 돈 천 냥을 나귀에 싫어 보내고 얼마 후 상주 땅에 가서 서 선달을 찾아 논까지 사주었다. 이 훈훈한 소식은 곧바로 조정에까지 전달되어 두 사람 모두 임금으로부터 큰 상까지 받게 되었다.

(德不孤必有隣)’이라고 했다.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뜻이다. 이 두 사람의 만남은 말 그대로 서로 ‘인과응보’의 정을 주고받은 아주 좋은 귀감(龜鑑)이 되는 훈훈한 이야기다.

인과응보는 본래 불교용어로 전생(前生)의 인연(因緣)에 따라 금생(今生)에서 그에 합당한 보답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

이와 비슷한 말로 업보(業報)라는 말도 있는데 전생에 저지른 악한 행동에 따라 금생에 그에 걸 맞는 결과가 주어진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운명은 자신의 과거 행동에 따라 만들어 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