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 자유로운 자유, 가치있는 자유
[사람과 삶] 자유로운 자유, 가치있는 자유
  • 광양뉴스
  • 승인 2022.04.08 17:41
  • 호수 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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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임
•광양YWCA 이사
•국방부 / 여성가족부 양성평등교육 진흥원 전문강사

코로나 상황이 길어짐에 따라 내가 하는 일과 관련해서도 여러 가지 변동 사항이 생겼다.

지역을 돌아가며 세미나를 개최한다든지, 정기적으로 워크숍을 한다든지, 일정 규모 이상 인원이 모이는 회의를 하기도 조심스러운지라 고심 끝에 온라인 독서모임을 하기로 하였고 어느덧 햇수로 3년째 접어들고 있다.

책이나 논문을 선정하고 구성원들이 돌아가며 발제를 하는 방식이었는데 주로 ‘범죄예방정책 통계분석’이나 ‘아주 친밀한 폭력’, ‘젠더 감정 정치’ 등등이었다.

그러던 중 우리에게도 치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아져서 치유적 책 읽기의 일환으로 최근 맑고 친환경적인 주제의 책을 선정해 보기도 했는데, 이번에 선정한 책 중 한 권을 읽으면서 2주째 서로 내용을 나누다가 구성원들이 모두 시간을 멈추고 오래 생각한 대목이 있었다.

예의 내용 배경은 미국 캔자스 시골 지역, 오래된 울타리와 익숙한 식물 이름들, 들판과 숲속 풍경을 묘사해 놓은 것 하며, 낡은 집 내부를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설명해서 마치 어릴 때 TV로 보던 ‘빨강머리 앤’이나 ‘초원의 집’을 보는 것 같은 전개를 이어가다가 딸을 학교에 보낸 엄마가 아이의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으면서 잠깐 호흡이 달라진다.

6학년인 아이가 학교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는 시간에 혼자만 일어서지 않고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다는 것이다.

아이가 수업에 지장을 주거나 말썽을 피우는 것은 아니며 그저 의례에 동참하지 않고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을 뿐인데, 문제는 하루 이틀 지나자 다른 아이들도 따라하기 시작했다는 것인데...

그 엄마는 아이가 사리분별이 가능한 나이에 도달했다고 믿었기에 강요나 간섭할 생각이 없었고 다만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얘기를 하자 아이는 이렇게 설명한다.

“엄마, 나는 거기 서서 거짓말하고 싶진 않아요. 자유를 강제로 말하게 시킨다면 그게 어떻게 자유예요?”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 기억하실지 모르겠다. 하교 시간, 혹은 퇴근 시간인 6시 무렵 길거리에서 애국가가 울리면 일제히 걸음을 멈췄던 <국기 하강식>의 기억, 멋모르던 어린 시절, 애국심 뿜뿜 어린 표정으로 앞다투어 외우던 <국민교육헌장>의 기억, 멋모르던 어린 시절,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로 시작되는 국기에 대한 맹세에 동참하면서 잠시나마 우리의 마음이 하나가 된 것 같았고, 모두가 정의와 자유를 소리 높여 외치면 우리에게도 정말 정의와 자유가 실현될 것만 같지 않았던가?

일각에서는 혹시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린아이들에게 정치 체제에 충성 서약을 시킨다는 발상이 무척 이상하다고... 그러나 방식과 내용과 그런 것을 하도록 시킨 사람의 의도는 일단 미뤄두고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 등을 보면서 정말 강하게 드는 생각은 ‘우리나라’에 대한 소중함이다. 그리고 목청껏 부를 수 있는 ‘우리 국가’가 있다는 것, 또한 아직 애국가를 4절까지 외우고 있는 내가 다행스럽고,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우리 국기’가 있다는 자부심이다.

우리가 대한민국이라는 이 자부심을 갖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과 피흘림이 있었는지를 생각한다면 이 가치를 가벼이 여기거나 손상시키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 될 것이기에 치유적 책 읽기로 시작한 생각 나눔이 기승전 정치 얘기로 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아닐까?

그리고 솔직히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고, 결국 우리 사는 것이 정치 아니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