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칼럼-구안능지(具眼能知) : 안목을 가진 사람이라야 옳고 그름을 안다
고전칼럼-구안능지(具眼能知) : 안목을 가진 사람이라야 옳고 그름을 안다
  • 광양뉴스
  • 승인 2022.04.29 17:21
  • 호수 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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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일 연관단지 대한시멘트 1공장
이경일 연관단지 대한시멘트 1공장

사람의 눈은 보고 그냥 넘어가는 것보다는 그 일에 있어서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때 전문가, 또는 그 부분에 조예(造詣)가 깊은 지식인이라고 한다. 그냥 보고 지나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보통 사람일 뿐이다.

조선 시대 광해군(光海君) 때 유몽인(柳夢寅)은 10여 년 동안 은둔생활을 하면서 야담(野談)을 수집하여 《어우야담(於于野談)》이란 문집을 발간하였다. 이 야담집은 조선시대 설문(說問)문학의 최고로 꼽힌다. 

왕실 귀인에서부터 천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설화들을 유몽인의 특이한 문장으로 생동감 있게 묘사한 귀중한 자료로 남아있다. 

이 책에서 현시대에도 교훈이 될 만한 이야기를 소개하면 아무리 칭찬이 자자하다고 해도 전문가의 안목으로 평가되지 않는다면 쓸모없이 묻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사람이 중국에서 낙락장송(落落長松)이 땅에 스칠 듯 말 듯 한 잘 그린 그림 한편을 사왔다. 

그림 속에 선비가 고개를 들어 노송을 쳐다보는 모습을 보고 안견(安堅)이 목덜미에 주름이 빠진 것을 보니 훌륭한 작품이 못된다고 지적했다. 

조선 전기 세종(世宗)시대에 산수화의 대가로 조선 초기의 최고의 화가 안견이 보통 사람이 찾아내지 못한 결점을 말하자 이 그림은 금방 값어치가 추락했고 이 그림을 좋다고 소장 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또 다른 한 그림은 노인이 사랑스럽게 손자를 무릎에 앉히고 밥을 먹이는 신묘한 필치의 그림을 성종(成宗)이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유는 할아버지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에게 밥을 먹이려면 자신의 입도 저절로 벌어지는 법인데 입을 꽉 다문 무표정한 모습으로 그렸으니 기본을 살리지 못해 화법을 잃었다고 지적 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유몽인은 “한번 본의를 잃으면 아무리 화려하고 아름다워도 식자(識者)가 취하지 않는다. 안목을 갖춘 사람만이 능히 알 수 있다”(具眼能知)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면 그림에 조예가 깊지 않은 사람도 무엇 때문에 값어치가 떨어졌는지 금방 알 수 있다. 그러나 디테일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면 보통 사람들 눈에는 쉽게 발견되지 못하는 부분이다. 

미세하지만 포인트를 살리고 살리지 못하고는 사소(些少)한데에 숨어있다. 기교는 손으로 하는 일이나 유효적절한, 즉 적재적소에 쓰이지 않으면 값어치 없는 물건이 되고 만다. 

가짜일수록 그럴싸하게 진짜같이 보인다. 진짜는 사람의 눈을 놀라게 하는 법이 없다. 덤덤하고 질박(質朴)하기 때문이다. 꽉 다문 입으로 손자에게 한 숟갈이라도 더 먹이고픈 할아버지의 마음이 사랑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목에 주름을 놓치는 바람에 노송과 아우러지는 고풍스런 마음과 기상이 흩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훌륭하다고 칭찬을 해도 사소해 보이는 흠집은 전문가의 눈을 벗어날 수 없다.   

일본에 유명한 자기계발 여성작가 요네하라 마리(米原万里)의 ‘교양노트’《사소해 보이는 것의 힘》이라는 책에서도 어우야담과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건축가를 꿈꾸던 한 젊은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담는 집을 설계하고 싶었다. 

그는 온 정성을 쏟아 오랜 시간 고치고 다듬어 도면과 조감도(鳥瞰圖)를 완성했다. 나름 흡족했다. 집을 지을 목수를 찾아가 자랑스럽게 이 설계도를 내밀었다. 

한참동안 설계도를 보면서 늙은 목수는 조용히 말을 꺼낸다. “이건 기쁨과 행복의 마을이 아니라 슬픔과 불행이 감도는 마을로 보이네.” “그럴 리가요?” “애써서 만든 정성은 보이네만. 도로와 건물의 위치 안배, 소품의 배치까지도 완벽(完璧)하네. 그러나 자네가 진짜 중요한 것을 빠뜨렸네. 건물의 그림자가 어떻게 지는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네. 햇빛을 받지 못하는 마을은 어두침침한 회색 마을이 되고 만다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게 되면 우울해진다네. 젊은이 명심하게 그림자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사소해 보이지만 절대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네. 그것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닐세.”

눈은 사물을 보면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지식과 지혜다. 사물의 가치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고 오랜 경험과 교육 그리고 훈련에서 온다. 안목은 구별할 수 있는 힘이고 능력을 갖춘 사람의 역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