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동시이야기 - 거울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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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양뉴스
  • 승인 2022.07.02 13:55
  • 호수 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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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과학 4-2 3. 그림자와 거울
박행신 동시작가<br>
박행신 동시작가

 

 

 

 

 

 

 

 

더 더 더

이른 아침부터 오일 시장 나들이 그늘에

할머니 한 분이 과일전을 펼쳐 놨어요

자전거들이 따르 따르르릉 지나가고

차들이 빠아 빠아 빵빵 지나가고

장꾼들이 눈치를 살피다 황급히 지나가고

작달막한 느티나무 가로수가

심심해서 그늘을 슬쩍 뒤척거렸어요

“아이, 따가워!”

과일들이 깜짝 놀라 호들갑을 떨자

할머니는 서둘러 그늘로 옮겨주었어요

한참 후에

가로수는 더 심심해서 그늘을 더 줄였어요

과일들은 더 따갑다고 더 아우성쳤어요

할머니는 더 작은 그늘로 더 빨리 옮겨주었어요

“이런, 괘씸한 일이 있나!”

바로 곁 높직한 건물이 커다란 그늘을 끌고 와 작달막한 느티나무 그늘을 덮어버렸어요
 

아기 졸참나무의 슬픔

뒷산 자락에 크고 작은 잡나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작은 숲을 이루고 있었어요. 10월이 다 지나자 울긋불긋 곱게 물든 단풍들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그중에서 가장 큰 나무는 올망졸망 도토리들을 달고 있는 졸참나무였어요.

“이제 너희들도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엄마 곁을 어서 떠나려무나.”

엄마 졸참나무가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나뭇가지들을 흔들었어요. 그러자 도토리들이 우수수 떨어졌어요.

“아이구, 머리야! 그렇다고 그렇게 갑자기 떨어뜨리면 어떡해요?”

도토리들이 투덜거리며 여기저기 사방으로 흩어져 굴러다녔어요.

“난, 멀리 가지 않을 거야. 엄마 곁에 꼭 붙어서 살 거야.”

작지만 야무지게 생긴 도토리 하나가 엄마 졸참나무 발등 가까이 굴러왔어요.

“안 된단다, 애야. 여긴 네가 살기에 안 좋은 곳이란다.”

“여름철 땡볕을 엄마가 그늘로 가려주니 얼마나 시원하고 좋겠어요. 난 여기가 제일 좋을 것 같아요.”

갓 깨어난 새싹들은 봄볕이 보드라운 얼굴에 직접 닿으면 견디기가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어요. 그 마음을 잘 알고 있는 엄마는 안타까웠지만 더 이상 어쩌지 못하고 나뭇잎만 수북이 쌓아주었어요.

봄이 오자 봄비 촉촉이 내리고 나무마다 서둘러 이파리들을 꺼내 들었고, 땅에서도 새싹들이 뾰족이 얼굴을 내밀었어요. 도토리는 다른 새싹들보다 늦게 깨어났어요.

“야, 잘 잤다!”

“이제야 깨어났구나! 그래, 고생 많았다. 축하한다!”

“아이, 눈부셔! 엄마가 만들어 준 그늘 아래라서 참 다행이에요.“지금은 다행이다만, 앞으로 네가 잘 자라야 할 텐데….”

엄마 곁에는 달랑 아기 졸참나무뿐이었어요. 엄마는 그 점이 불안했어요.

날마다 봄볕이 따뜻한 마음을 골고루 깔아주었고, 봄비도 때때로 달콤한 손길을 넉넉히 뿌려주었어요. 다른 이파리들 때문에 그늘이 되면 이리저리 고개를 내밀어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이파리들의 앞다툼에 작은 숲은 날마다 부산스러웠어요. 그 덕분에 크고 작은 나무들은 하루가 다르게 파릇파릇 바꾸었고 가지들을 주욱주욱 뻗어냈어요.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면 사그락사그락 속삭이며 부드럽게 춤을 추는 놀이판이 작은 동산을 가득 채웠어요.

그런데 아기 졸참나무는 다른 나무들과 달랐어요. 이파리도 넉넉하지도 않았고, 나뭇가지들도 몇 개 되지 않았으며, 키마저 작달막했어요.

“엄마, 나도 새집 하나 갖고 싶어요. 심심해서 그래요.”

어느 날 아기 졸참나무는 저만큼 어우러진 잡목 속에 가려져 있는 뱁새 둥지를 보았나 봐요. 뱁새가 자주 드나드는가 싶더니 하얗고 귀여운 알을 세 개나 낳아놓은 둥지였어요.

“새집을 갖고 싶다고? 이를 어쩐담? 넌 그럴 수가 없는데 말이야.”

“왜요? 저도 저 새집처럼 알을 잘 품고 있다가 귀여운 새끼들이 깨어나는 것을 보고 싶단 말이에요.”

“아가야, 넌 지금 외톨이란다. 크고 작은 나무들이 어울려 있어야 하고, 가지도 많고 잎이 무성해서 둥지를 안전하게 잘 감출 수 있어야 한단다.”

아기 졸참나무는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속상하고 억울했어요. 무엇 때문에 일이 되었는지 알 수도 없었어요.

따가운 햇볕이 싫어서 그저 엄마 가까이에서 엄마의 그늘 밑에서 살고 싶었을 뿐이었어요. 혼란스런 마음에 엄마에게 투정만 부렸어요.

“저를 왜 이렇게 키가 작고 볼품이 없이 자라게 놔두셨나요? 너무해요, 엄마!”“그러게 애초에 내가 뭐랬니? 내 가까이 오지 말고 저 멀리 가라고 했잖니?”

엄마는 풀이 죽어 있는 아기 졸참나무를 바라보니 마음이 몹시 아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