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 -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쪽 역사
사람과 삶 -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쪽 역사
  • 광양뉴스
  • 승인 2022.08.19 17:20
  • 호수 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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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임 / 광양YWCA 이사 / 국방부, 여성가족부 양성평등교육 진흥원 전문강사
김양임 / 광양YWCA 이사 / 국방부, 여성가족부 양성평등교육 진흥원 전문강사

며칠 전 광복 77주년이었는데 광복절과 상관없이 청소년들과 토론할 기회가 있을 때면 짐짓 우매한 질문을 던지곤 한다. 

위인전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누구인지, 그리고 독립운동가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누구인지, 또한 사회 교과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누구인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얘기를 나눠보게 한 후, 그 중 여성 인물은 누구인지 질문을 하면 대부분 몇 초 동안 침묵이 흐른다.

 

먼저, ‘연수영’ 장군이 누군지 아십니까? 연수영 장군은 고구려 연개소문의 누이동생이다. 연수영이 도사로 있던 석성 소장루(梳壯樓), 비사성 등지에서 발견된 비문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등장한다. (서길수 서경대학교 교수, 전영미 충북대학교 교수 해석)

“소장루는 연개소문이 자기 누이 개수영(蓋秀英:淵秀英)을 위해 지은 것이라고 전한다.” 을사(乙巳) 봄 3월, 당(唐) 매괴왕(埋魁王) 이세민(李世民)이 수륙(水陸) 105만 병력으로 요동 지역을 침범했다.

 642년에 석성도사로 부임한 연수영은 당군의 침략에 대비해 수군의 증강부터 착수했다. 그녀는 5000명의 군사를 수군으로 양성했으며, 70여척의 전함도 건조했다. 그녀는 비단 실권자 연개소문의 누이동생이라는 후광이 아니라 문무에서 탁월한 능력과 비상한 통솔력으로 부하 장졸들의 신망을 받았다.

그럼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쓴 독립운동가는 누구인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중근 의사를 꼽을 것이다. 그러나 독립군의 어머니, 여자 안중근이라 불린 ‘남자현’을 기억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그는 1932년 국제연맹 조사단이 하얼빈에 온다는소식을 듣고 왼손 무명지 두 마디를 잘라 <조선독립원 (朝鮮獨立願)> 이라는 혈서를 써서 전달하였다.

영화 ‘암살’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남자현은 46세였던 3.1운동 당시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을 목격하고 아들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서로군정서에 가입, 군사들을 뒷바라지하며 아들을 무관학교로 보내 독립군으로 키운다. 망명 생활 5년째에 조선 총독을 두 번이나 지낸 사이토 마코토의 암살을 계획하지만 삼엄한 경계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7년 뒤 일본 전권대사 무토 노부요시 암살을 결심하고 권총과 폭탄을 몸에 숨겨 가던 중 경찰에 붙잡힌다. 혹독한 고문을 당한 그는 감옥에서 풀려나지만 얼마 안 가 향년 61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또한 안중근 의사의 여동생 안성녀 여사를 아시나요?

안중근 의사 가문은 40여명이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대한독립운동사의 축소판인 셈인데 독립운동 서훈자는 안 의사 등 11명에 그치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안 의사의 친동생인 안성녀 여사도 빠져 있다. 

그럼, 나이 어린 학생 독립운동가는 없었을까요?

1) 최소 3개월 이상 감옥에 투옥되었다는 증거가 필요하다.

2) 독립운동 단체에 지위가 있는 경우 참고할 수 있다.

3)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위한 공이 있어야 한다.

4) 독립운동을 한 것이 문서로 남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5) 사망 시까지 행동에 문제가 없어야 한다.

이 독립유공자 선정기준에 맞는 당시 학생이 몇 명이나 될까? 

퇴학을 당하거나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학생들은? 여러분이 독립유공자 선정위원이 되어서 기준을 한 번 만들어 보시겠어요? 오늘도 기억되지 않은 수 많은 무명들 앞에 마음 깊이 고개를 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