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동시이야기 - 거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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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양뉴스
  • 승인 2022.08.19 17:22
  • 호수 9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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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3. 그림자와 거울

 

등 돌리고 싶다

 

“애들이 놀려서 싫단 말야!”

민이는 거울 앞에서

한사코 떼만 쓴다

 

“우리 민이 착하지?

나중에 크면 다 고쳐줄 거야.“

엄마는 등을 토닥거리며

가방을 메어주신다

 

“점보래요! 점보래요!”

태어날 때부터 왼쪽 뺨에 생긴

저 거무스름한 둥근 점

친구들이 놀려댄다며

언제부턴가 짜증을 낸다

 

앉은뱅이 꽃처럼

늘 동무들의 뒷자리에만

낮게 낮게 앉아 있거나

웃음 가득했던 동그란 두 눈도

이제는 창밖에만 앉는다

 

거울은 그만 등 돌아 서고 싶다

보이는 것 그대로

진짜만 진짜만 내보이는데도

이런 때는 그만 등 돌리고 싶다

 

 

박행신 동시작가
박행신 동시작가

 

엄마의 손거울

“엄마, 나 왔어. 잘 지냈어?”

“누구신대요?”

90세가 다된 엄마는 오늘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셨어요. 식구들은 물론이고 자식조차 알아보지 못하시는 우리 엄마의 시간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엄마는 치매 때문에 1년 전부터 요양원에 계신답니다. 며칠 전 요양보호사로부터 화장지 등 생활필수품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몇 가지를 챙겨왔어요. 물건들을 가방에서 주섬주섬 꺼내 침대 곁에 있는 사물함에 가지런히 넣어 정리해 주었어요.

“엄마, 물건들을 좀 가지고 왔으니 필요할 때 꺼내 쓰세요.”

“어? 그거 이리 줘요!”

엄마는 갑자기 내 손에서 낚아채듯 손거울을 빼앗아갔어요. 자개가 박힌, 열고 닫을 수 있는 컴팩트형 손거울이었어요. 그 누구에게도 절대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 등 뒤로 감추며 적대감 실린 눈빛으로 내 눈치를 살피셨어요. 

나는 깜짝 놀랐어요. 엄마는 왜 손거울에 무섭도록 큰 집착을 보일까 싶었어요.

‘아, 맞아! 그것이었구나!’ 

나는 문득 한 기억이 떠올랐어요. 손거울에 대한 지난 기억이었어요.

엄마는 시집올 때 가지고 온 물건 중에 손거울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대요. 외할아버지께서 어렵사리 사주신 선물이었대요. 꽃과 나비가 예쁘게 박힌 자개 손거울이었대요. 외출할 때면 손거울을 가방에 넣고 다니며 즐겨 사용했대요. 그런데 그 손거울을 나와 동생이 깨뜨리고 말았어요. 

그날은 부모님 모두 일하러 나가시고 우리들만 집에 있었어요. 나는 무심코 큰방 경대에 놓은 손거울을 보았어요. 호기심이 생겨 얼른 열어 내 얼굴을 비춰봤어요. 그 작은 거울 안에 내 얼굴이 몽땅 들어갈 뿐만 아니라, 동시에 두 개가 보였어요. 접었다 폈다 할 때마다 얼굴이 감춰졌다 들춰졌다 하는 것이 요술거울 같이 신기했어요.

“얘, 이 요솔거울 좀 봐봐. 내 얼굴이 두 개나 보여!”

“어, 정말이네. 이게 아주 재밌네?”

작은 방에 있는 동생이 달려와 손거울을 빼앗아 날개를 접었다 폈다 했어요. 우리는 서로 보겠다고 빼앗는 과정에서 손거울이 경대 모서리에 부딪쳐 깨지고 말았어요. 

“어떡하지? 엄마가 아시면 큰일 날 텐데.” 

우리는 한순간 얼어붙어 서로 아무 말도 못 하고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어요.

“그러지 말고 우리 이걸 엄마 몰래 어디 멀리 버리자. 엄마가 물으시면 우리는 모르는 척하는 거야.”

나는 동생과 함께 거울 조각들을 주워 뒷마당으로 가지고 가서 괭이로 구덩이를 파 깊이 묻어버렸어요. 

“애들아, 혹시 니네들 엄마 손거울 못 봤니?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는구나.”

“아아니요! 못 봤는데요.”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것만 같았어요. 금세라도 ‘니네들이 깨뜨리고 안 그러는 척하고 있는 거지?’하며 우리를 다그치실 것만 같았어요.\

“거 참 이상하네! 어디다 버렸을까?”

엄마는 온 집안을 여기저기를 뒤지고 다니셨어요. 우리는 행여나 들통날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엄마의 눈 밖으로 피해서 살피기만 했어요. 엄마의 소동은 끝내 아무런 소득도 없이 늦은 오후에서야 끝이 났어요. 그런 후에 우리는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살았지요. 

이번에 손거울을 산 것은 그런 옛일을 들춰내려는 뜻이 아니었어요. 화장품점에 갔다가 엄마의 엉클어진 머리나 다듬으시라고 아담하고 예뻐 보여서 골라왔을 뿐이었어요. 지금 보니 예전에 엄마가 가지고 있던 그 손거울과 비슷한 문양 같았어요. 엄마가 저렇게 집착하시는 것은 분명 그때 그 기억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인가 봐요. 오래되었지만 아주 강렬하게 박힌 기억이어서 그러나 봐요.

아마도 저 손거울에 대한 기억이 엄마와 나를 잇는 유일한 기억이 아닐까요? 저 기억마저 없어진다면 엄마와 나는 어떤 사이가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