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귤화위지(橘化爲枳): 귤이 풍토에 따라 탱자가 된다
[칼럼] 귤화위지(橘化爲枳): 귤이 풍토에 따라 탱자가 된다
  • 광양뉴스
  • 승인 2022.09.08 16:11
  • 호수 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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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 환경에 따라 사람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하는 말이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로 잘 알려진 맹자(孟子)의 어머니도 당시에 치맛바람을 일으킨 엄마 중에 한 사람이다. 처음에 공동묘지 근처에 살다가 장터 근처로 이사가 살았는데 보는 것이 거래 흥정하는 것만 있어 장사치 흉내만 냈다. 그래서 서당 옆으로 다시 이사를 갔는데 날마다 글을 읽는 흉내를 내는 것을 보고 여기가 교육 환경이 좋다고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그래서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내세우는 성어가 줄여서 삼천지교(三遷之敎)라고 부른다.

환경이 인간을 만들기 보다는 인간이 환경을 형성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주변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다.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의 지배를 받는 식물도 주위 환경에 따라 다르게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닥에 깔려 구불구불하게 자라는 쑥도 삼밭에서 삼과 함께 자라면 삼 따라서 곧고 길게 자란다. 거기에서 생긴 고사가 마중봉생(麻中蓬生)이다.

강남에서 자라던 귤을 강북으로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귤화위지(橘化爲枳)’도 풍토나 자연환경에 따라 결과가 바뀐다는 것을 춘추시대 제나라 재상을 지냈던 안영(晏嬰)이 말했다. 관중(管仲)과 함께 제(齊)나라 재상으로 명성을 떨쳐 사마천 《사기(史記)》에 관안(管晏)열전으로 나온다. 근검절약을 실천하고 세 분의 임금을 모시면서도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충간(忠諫)을 서슴지 않았으며 겨우 난장이를 면한 왜소(矮小)한 체구지만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공자와 비슷한 시기에 존경받는 재상이었다.

그런 안영이 한번은 초(楚)나라에 사신(使臣)으로 가게 되었다. 초 영왕(靈王)은 안영이 사신으로 온다기에 이번 기회에 왜소한 체구를 약점 삼아 놀려주려고 마음먹었다. 원계강 이라는 신하를 시켜 문에 들어올 때부터 모욕을 주려고 했다. 그들 일행은 인원도 단출하였고 행장도 검소했다. 성문 밖까지 마중 나온 원계강은 정문은 굳게 잠그고 그 옆에 조그만 쪽문을 만들어 겨우 사람이 고개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문으로 안내했다. 안영은 단번에 왜소한 나에게 수모를 주려고 이런 짓을 한다고 알아 차렸다. 원계강은 조그만 쪽문으로 안내하며 “대왕께서 기다리시니 이 문으로 드시지요.” 안평중은 들어가지 않고 버티고 서서 안내자 원계강에게 “이 문은 사람이 드나들기에 너무 적지 않소! 개나 드나드는 개구멍으로 사람을 들어가라고 하는 것은 개 나라의 풍습인데 나는 사람 나라에 왔지 개 나라에 온 것이 아니오!” 원계강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정문을 열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은 곧바로 영왕에게 전해졌다. 영왕은 다른 방법으로 모욕을 주려고 궁리하였다.

안평중 일행은 영왕이 있는 곳에 들어와 간단한 인사는 나누었지만 영왕은 거만하기 짝이 없었다. 마침 다과상이 나와서 함께 마주 앉아 환담을 나누며 귤(橘) 한 개를 집어서 안평중에게 주었다.

탱자는 많이 보았어도 귤은 말로만 들었지 처음 보는 과일이었다. 남방에서 나는 귤이라고 소개했지만 먹는 방법은 가르쳐 주지 않았다. 안평중은 껍질도 벗기지 않고 통째 입에 넣고 씹었다. 초왕은 그 모습을 보고 통쾌하게 웃었다. 이것도 모욕을 주려는 일환이었다. 안평중은 화가 났지만 참고 정중하게 “군왕께서 내려주시는 과실은 껍질을 벗기지 않고 먹는 것이 예의로 알고 있습니다. 대왕께서 껍질을 벗겨 먹으라는 분부가 안 계셔서 그대로 먹은 것입니다.” 임기응변(臨機應變)으로 둘러 댔지만 그 안에는 상대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초왕도 그의 능란한 말솜씨에 감탄을 했다.

그때 마침 무사가 포승줄에 묶인 죄수 한 사람을 데리고 지나갔다. 이 역시 안평중에게 수모를 주기 위하여 미리 짜놓은 각본이었다. 본래 궁궐 안에는 죄수가 없었다. 일부러 죄수를 데리고 오게 한 것이다. 초왕이 무사에게 묻는다. “그 죄수는 무슨 죄를 지었기에 결박하여 끌고 가느냐.” 무사가 초왕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하기를 “이놈은 도둑질을 하였습니다. 어떻게 처분할까요?” “어디에서 온 놈이냐?” “이놈은 제나라 사람입니다.”

안평중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자기를 욕보이기 위한 행위임을 대번에 알고 매우 불쾌하게 생각했지만 참고 있었다.

초왕은 시치미를 떼고 “그놈이 제나라 사람이라고.” 초왕은 이번만큼은 모욕을 주기 위해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안평중을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넘어다보며, “제나라 사람들은 도둑질을 잘하는 모양이죠?” 하며 조롱 섞인 농담조로 물었다. 안평중 역시 농담 비슷하게 웃어넘기며 “제가 알기로는 조금 전에 먹었던 귤이 남쪽나라에서는 달콤한 귤이 되지만 북쪽 나라에 옮겨 심으면 나무는 같아도 신맛이 강해 먹지 못하는 탱자가 된다고 합니다.

그것은 기후와 풍토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제나라에는 도둑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데 제나라 사람이 초나라에 와서 도둑질을 했다면 그것은 초와 제의 기후와 풍토가 다르기 때문은 아닐까요?”

사람이 작다고 놀려주려 했던 초왕은 오히려 당하기만 하면서도 할 말이 없었다. 사신으로 온 사람에게 무례한 짓도 했지만 안평중은 안자춘추(晏子春秋)라는 책을 써서 지금 까지도 전해 내려오는 훌륭한 사람이다. 안영은 공자와 동시대 사람으로 함께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서로 경계하며 공경했던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