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은 발전을 거듭하면서 불확실성은 더 커지고 있다. 우리 모두는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면서 다음 세대에 무엇을 유산으로 줄까 생각하는 부모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
그 증거가 바로 아파트, 돈 등 물질적인 가치를 가진 재산을 후손에게 물려주려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모습에서 엿볼 수 있다.
자녀의 편안한 미래를 위해 가능한 한 많은 돈이나 가업을 물려주길 희망하는가? 그러나 돈으로 ‘자녀의 미래’를 도와주려 해도 세대 간 돈에 대한 철학을 공유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험한 꼴’을 당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가족 구성원들 간에 재산 형성의 목표와 비전, 핵심 가치를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
좋은 사례로 8대 250여 년간 세계 최대의 금융 가문을 유지해오고 있는 ‘로스차일드 가문’은 그 살아 있는 증거다.
100여년 전, 미국의 한 부자는 대학에 다니는 두 아들에게 매달 수표로 100달러씩을 보내주었다.
당시 이 부자 밑에서 일하던 비서는 매달 수표를 부칠 때마다 부자 아들이 매우 부러웠다고 한다. 그러나 형제가 졸업장을 들고 집에 돌아왔을 때 이들은 졸업증서 말고 다른 것들도 함께 가져왔다. 하나는 음주실력이었고, 다른 하나는 과소비였다. 매달 받았던 수표가 그들을 치열하게 살 필요가 없게 해주었기에 형제는 늘 흥청망청 살았다.
결국 아버지는 파산을 했고, 호화저택은 매물로 내놨다. 아들 한 명은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다른 아들은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했다. 나폴레온 힐이 쓴 ‘성공의 법칙’에 나오는 이 슬픈 일화는 저자인 힐이 미국에서 어느 부자 아빠의 비서로 일할 때의 실제 경험담이다. 이 이야기는 100여 년 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지금 여기서’ 우리에게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반복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 같다.
한국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된다. “정 안 되면 주유소나 하나 차려주면 된다.” 서울 부촌에 사는 김 모 씨는 공부와 담을 쌓은 자녀 걱정을 하는 아내에게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자녀들은 더더욱 공부를 안 한다. 그뿐만 아니라 아빠와 자녀 사이도 말이 아니다. 김 씨는 툭하면 다 큰 아들을 때리고, 심지어 욕도 서슴지 않고 한다. 김 씨는 그동안 사교육비로 투자한 돈이 얼마인데 아빠에게 고분고분하지 않는다고 늘 목소리를 높인다. 부인은 “남편이 자식들에게 모든 걸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니 사이가 더욱 나빠지는 것 같다”고 하소연을 한다.
이들 부부는 부부관계도 파국 일보 직전이다.
이러한 사례들에서 알 수 있듯이 ‘돈이면 다 된다’라는 부모의 황금만능주의가 자녀들에게 배금주의를 조장하고, 이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문제의 근원은 자녀가 아닌 부모에게 있었던 것이다. 인간이란 자신이 피땀을 흘려 번 돈이 아니면 결코 돈의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 부모의 돈은 ‘공돈’일 뿐이다. 돈의 소중함을 모르니 흥청망청 돈을 쓰다 이내 빈털터리가 되고 만다. 그게 인류의 역사가 주는 산 교훈이다.
어쩌면 세상에서 불쌍한 사람은 ‘돈의 노예’가 아닐까. 아무 생각없이 무조건 돈만 많이 벌자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돈의 노예에 지나지 않는다.
돈을 벌어 앞으로 무슨 일을 할 것인지를 먼저 생각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 돈을 왜 많이 벌고 싶어 하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더욱이 돈으로 ‘자녀의 미래’를 해결하려 한다거나 또는 상속이나 증여, 기부를 하려고 해도 자녀와 돈에 대한 철학을 공유하지 못한다면 ‘험한 꼴’을 당할 수도 있다.
결실의 계절, 이 좋은 가을에 자연이 베푼 들판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후대들은 선대로부터 무엇을 유산으로 원하는가를 다시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