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근주자적(近朱者赤) : 붉은색을 가까이하면 붉어진다
[칼럼] 근주자적(近朱者赤) : 붉은색을 가까이하면 붉어진다
  • 광양뉴스
  • 승인 2023.01.20 15:42
  • 호수 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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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일 연관단지 대한시멘트 1공장

모든 사물은 주위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게 되어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도 예외일수 없다. 화분에 심어 정성 들여 가꾸면 보통의 풀도 화초로 대접받는다. 인간도 별 볼일 없는 사람인데도 그럴듯한 지위를 얻으면 잘 난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서 자리가 인격을 나타낸다는 말도 있다.

환경이나 풍토의 힘은 세다. 중국의 양자강 이남의 귤(橘)은 달고 맛이 좋은데 같은 종의 나무인데도 강북에 가져다 심으면 열매가 탱자가 되어 시어서 못 먹는다고 한다. 여기에서 나온 고사가 귤화위지(橘化爲枳) 남귤북지(南橘北枳)다.

동양 유교의 아성(亞聖)이라 일컫는 맹자(孟子)는 어머니의 치맛바람으로 교육 환경을 바꿔 가며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란 고사를 만들어냈다. 지금까지도 추앙받는 인물이며 성인들 중에 가장 강직한 인물로 꼽힌다. 주위 환경을 교육시키기 좋은 곳으로 세 번이나 이사를 해서 어머니의 정성으로 성인이 된 사람이다. 이처럼 환경의 중요성을 말하는 수많은 고사 중에 일상생활에 가깝게 느껴지는 이야기다. 붉은 색을 가까이 하면 붉어지고 먹을 가까이 하면 검게 된다는 근묵자흑(近墨者黑)과 세트로 쓰이는 고사다.

중국 삼국시대를 지나 제갈공명과 겨뤄 결국은 승리한 사마의(司馬懿)의 아들 사마염(司馬炎)이 세운 서진(西晉)시절 부현(傅玄)이란 학자가 지은 《태자소부잠(太子少傅箴)》에 나오는 이야기다.

“대체로 쇠와 나무는 일정한 모양이 없어 정해진 틀에 맞춰 둥글게 되기도 하고 각이 지기도 한다. 붉은 색을 가까이 하면 붉은 물이 들고, 먹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검은 물이 들기 마련이다. 소리가 고르면 음향도 맑게 울리고, 형상이 바르고 단정하면 그림자도 곧아진다.”고 했다.

비슷한 말로 공자가 말한 지란지교(芝蘭之交)를 설명하면서 “착한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치 향기 그윽한 난초가 있는 방에 들어간 것 같아서 그와 함께 오래 지내면 비록 그 향기는 맡을 수 없지만 자연히 그에게 동화되어 착한 사람이 된다. 그러나 악한 사람과 같이 있으면 마치 악취가 풍기는 어물전에 들어간 것 같아서 그와 함께 오래 지내면 비록 그 악취는 맡게 되지 못할지라도 그에게 동화되어 악한 사람이 된다고 했다.” 공자가 친구 사귐에 있어서 가려 사귀어야 함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불교 설화 중에 향을 싼 종이와 생선을 꿰었던 노끈을 빗대어 하는 이야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러 문화권에서 예로 많이 인용한다. 자기 자녀들이 비행 청소년들과 함께 있다가 범행에 가담하여 악행을 저지를 때가(특히 남자아이) 있을 수 있다. 경찰서에 불려간 부모들은 누구나 막론하고 이 고사 ‘근주자적’을 이야기하며 따지려 든다. ‘우리 아이는 본래 심성이 착하고 가정교육도 원만한데 친구를 잘 못 만나서 이런 일이 벌어 졌습니다.’ 이렇게 변명을 하고 책임 전가를 다른 아이에게 시키며 빠져 나오려고 애를 쓴다. 이 사람은 고사를 잘 모르거나 아니면 이기주의자 이 둘 중에 한가지다.

이런때는 근주자적이 아니고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고 말해야 합당한 표현이다. 자식은 부모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하지만 어느 부모가 자식 잘 못 가르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물론 이런 일이 있어서도 안 되겠지만 만약 있게 된다면 내가 자식 교육을 잘 못시켰다고 하면서 선처를 구하는 것이 옳을 일이다.

뜻은 다르지만 의미는 유사한 교육이 될 만한 이야기가 또 있다. ‘마중지봉(麻中之蓬)’이란 고사인데 삼밭에 쑥은 잡아주지 않아도 삼을 따라 곧게 자란다는 말이다. 삼밭에 난 쑥은 잡초에 불과하다. 그러나 주위에 삼 밖에 없으니 잡초인 쑥도 곧게 자라는 삼을 따라서 곧게 자란다. 이런 까닭에 군자는 거처를 정할 때는 반드시 마을을 가려서 하고, 교류할 때도 반드시 곧은 선비와 어울려야 한다. 이것은 사악함과 치우침을 막아서 중정(中正)에 가까이 가기 위함이다.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한 《순자(荀子)》 〈권학(勸學)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성악설은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악하다는 것이 아니다. 요지는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기본적으로 감성적 욕망에 주목하므로 그것을 그대로 방임(放任)하면 사회적인 혼란을 초래하기 때문에 외부의 가르침이나 예의를 후천적으로 배워 쌓아야 한다는 학설이다. 그런 것 들이 주위 환경이 많이 작용함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