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동시이야기 - 거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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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양뉴스
  • 승인 2023.02.18 09:49
  • 호수 99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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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행신 동시작가
박행신 동시작가

 

거울 이야기

 

거울 이야기 : 4-2 3. 그림자와 거울

 

 

 

 

그림자들의 뒷담화

 

우리들이 잠을 자면

그림자들도 따라서 잠을 잘까

잠을 자다 꿈을 꾸면

그림자들도 따라서 꿈을 꿀까

 

어떡한다지?

어젯밤 꿈속에서 

내 짝꿍 슬이의 뒷담화를 했는데

그림자 지들끼리 둘러앉아

속닥거리면 어떡한다지?

 

하굣길이 멀다는 핑계로

개구멍 울타리로 

몰래 빠져나왔는데

선생님 그림자까지 불러 모아

속닥거리면 어떡한다지?

 

민우는 그림자가 아니었어요 

 

 우리 반 민우는 지적 장애를 가진 친구였어요. 말을 잘 하지 않았지만 있는 듯 없는 듯 다소곳이 지내는 아주 조용한 친구였어요. 그래서 우리는 민우를 ‘그림자’라고 불렀어요. 항상 우리들 등 뒤에만 서야 하는.

“재 빼고 우리들끼리만 하면 돼.”“그림자는 있으나마나 한 존재야. 그냥 무시해도 돼.”수업 중이든 쉬는 시간이든 우리는 민우와 함께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어요. 말도 주고받지 않았으며 모둠활동 때에도 우리끼리 과제를 해결하곤 했어요. 

그런데 체험학습 날에 결국 큰 사건이 터지고 말았어요. 나 때문이었어요.

우리 반은 얼마 전에 국가정원으로 체험학습을 갔었어요. 

이제부터 모둠별로 활동할 거예요. 12시 정각에 저기 보이는 잔디밭으로 모두 모이세요. 점심은 함께 먹을 거예요.”

우리는 조별끼리 사진도 찍고, 그늘에 앉아 간식을 먹기도 했어요. 점심 때가 되자 선생님께서 모이라는 장소로 모여들었어요.

“다 모였나요? 하나, 둘, 셋…. 한 명이 부족하네요. 어? 민우가 안 보이네요?” 

선생님께서 숫자를 세시다가 당황한 듯 말씀하셨어요.

“민우 모둠원들은 나랑 같이 찾으러 가야겠어요. 다른 친구들은 기다리세요.”

갑자기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어요. 정말 어떻게 된 것은 아닐까? 초조한 마음은 시간이 갈수록 더 깊어졌지만, 차츰 지루해지면서 짜증이 나기 시작했어요, 

“어휴, 배고파. 이게 무슨 꼴이람! 졸졸 따라나 다닐 일이지 지가 뭘 하겠다고.”“그러게 말야. 도대체 도움이 안 돼요, 도움이 안 돼!”

여기저기서 불만스러운 소리가 터져 나오자 나도 한 마디 거들었어요. 

“다음부턴 아예 못 오게 하는데 어때? 이 무슨 개고생이람.”

1시간이 훨씬 넘어서야 선생님께서 민우를 앞세우고 나타나셨어요. 모두 숨이 목까지 차오르는 것이었어요.

“슬이는 핸드폰을 어디다 버리고 다녔던 거예요?”

선생님의 손에 내 핸드폰이 들려 있었어요. 나는 엉거주춤 핸드폰을 건너 받았어요. ‘아니, 내 핸드폰이 왜 선생님께 있지?’“민우가 우연히 슬이 핸드폰을 주워들고 여태껏 슬이를 찾아다녔던 거예요.”‘아, 그랬었구나!’

나는 사진도 찍고 잠시 쉬는 등 활동하다가 어딘가에 핸드폰을 놓고 일어섰나 봐요. 그걸 민우가 주워서 핸드폰 뒷면에 있는 내 이름을 보고 자기 모둠을 이탈하여 나를 찾아다닌 모양이었어요.

나는 민우의 얼굴에 송글거리는 땀방울을 보면서 뜻밖에 가슴이 울컥하는 거였어요. 

여태껏 그림자라고 놀리며 투명인간 취급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어요.

‘미안해 민우야! 넌 결코 그림자가 아니었어. 착하고 조용한 친구였을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