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 시답잖은 궤변에 대한 정성스러운 답변
[사람과 삶] 시답잖은 궤변에 대한 정성스러운 답변
  • 광양뉴스
  • 승인 2023.05.13 14:39
  • 호수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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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임<br>.광양ywca이사<br>.국방부/여성가족부 양성평교육진흥원 전문강사<br>
김양임
.광양ywca이사
.국방부/여성가족부 양성평교육진흥원 전문강사

거듭 얘기하지만 나는 결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왜냐면 아는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 모임을 거듭할수록 자꾸 과격한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을 어쩔 것인가!  얼마 전 나눴던 책 한 권을 한마디로 정리해 보자면 이렇다. 

시답잖은 개소리에 대한 아주 정성스러운 답변’. 

저자는 당시 루소 같은 남성 사상가의 궤변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반박하고 올바르지 않은 지점들을 정성스레 교정해준다. 개소리는 무시하는 게 답이라고들 하지만 개소리가 법과 질서가 된 세상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온 힘을 다해 설득하고 반박해 내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의 말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자 당시의 사상을 조금 더 꼬집어본다. 먼저 그 시대의 남성들은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착각하거나 인과관계의 방향 또는 명제를 잘못 설정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인과관계는 A가 B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형태를 말하고, 상관관계는 그 원인과 결과는 알 수 없으나 A와 B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를 말한다. 

“여성들은 가난하기 때문에 남성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라는 그 시대의 명제를 놓고 보면, 우선 여성이 가난하다고 해서 반드시 남성에게 의존할 필요는 없으며, 남성에게 의존하는 여성이 반드시 부유해지는 것도 아니다.  

또한 여성이 가난하다면 남성에게 의존시키지 않고 왜 여성이 가난해졌는가를 파악하고, 여성을 스스로 부유하게 만들어주는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아니면 여성의 가난은 남성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와 그러한 강요로부터 발생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성의 가난을 예시로 했지만, 이렇듯 남성들은 그 자체로 오류를 품은 수많은 명제를 켜켜이 쌓여나가면서 권력을 공고히 한 것으로 보인다.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라는 책에서는 개소리가 판을 치는 이유, 옳은 말들이 쉽게 무시되는 이유로 자신의 가치관이나 신념에 맞는 이야기만 주목하는 ‘확증편향’ 현상과 간단한 단서에 의해 쉽게 가치판단을 해버리는 ‘인지편향’ 현상 때문이라 이야기한다. 

18세기나 현시대의 젠더 갈등 역시 이와 관련 있어 보이는데, 자기 의견을 수정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상대와 논쟁을 하다 유치한 비방과 조롱으로 끝나는 상황이나, 집게손가락이 들어간 홍보물을 보고 일부 남성들이 기업 게시판을 발칵 뒤집어 놓는 일을 보면 그렇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지인들이 종종 “정말 공부해야 돼...”라는 말을 읊조리는데, 이 책을 통해 그 말이 확 와닿았다. 올바른 개소리의 규명을 위해 인지편향적 사고를 멈추고, 우선 잘 알아야 나, 혹은 상대가 어떤 지점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 확실한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판단하려면 적어도 동등한 위치에 있어야 가능하다며, 동등한 교육의 기회와 자본을 가질 수 있도록 여성을 자유롭게 하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 그 논리에 격하게 동의하면서 권리를 나누지 않은 채 의무만을 강요하는 말들을 거부하고, 우선 권리가 공평하게 분배되어 있는지를 따져보는 번거로운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그래서 뜬금없지만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져 본다.

나는 여성으로 태어났는가, 사회구조적으로 만들어졌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