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들려주는 이야기
바다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싶으시나요?
그러면 바닷가 조약돌밭에 가서 두 귀를 쫑긋 세우고 기다려보세요
한참을 기다리다 보면 마침내 조약돌과 물결이 주고받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을 거예요.
가까운 바다에서 밀려오는 잔잔한 물결은 숭어며 소라며 말미잘 같은 것들의 옹기종기 모여 사는 이야기를 조잘조잘 들려줄 거예요.
먼 바다에서 휘돌아다니던 덩치 큰 물결은 참치며 상어며 수염고래 같은 것들의 길고 긴 모험 이야기를 거친 숨결로 마구 마구 쏟아낼 거예요.
아, 달 밝은 여름밤에 찾아가면 달빛이 뿌려놓은 은빛 물결은 요즈음 북극곰과 그 아기 곰들이 먹이를 찾아 아주 아주 멀리 멀리 헤매고 있다는 은밀한 이야기를 조약돌들 가슴에 촤르르 촤르르 뿌려줄 거예요.
그 이야기는 꼭 들어보아야 해요.
조약돌은 알고 있었을까
내 친구 은식이가 그렇게 가버린 것은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우리 동네 앞 바닷가는 갯돌밭이었다.
갯돌밭은 경사가 완만한 언덕이었다. 위쪽에는 큼직한 돌멩이들이 있고, 밑에는 조무래기 조약돌들이 바글거렸다.
웬만한 파도에도 갯돌들이 뒤척이는 소리가 우리 집까지 들려왔다.
갯돌밭은 우리들의 신나는 놀이터였다. 반들거리고 예쁜 조약돌을 찾기도 하고, 납작한 조약돌을 던져 물수제비를 뜨기도 했다.
썰물 때가 되어 바닷물이 저 멀리 빨려가 얕아지면 입술이 새파래지도록 멱을 감기도 했다.
그날은 태풍 때문에 큰 바람이 불고 비가 주룩주룩 오다가 잠시 맑게 갠 날이었다. 태풍은 잠잠해졌지만 파도는 따라가지 못하고 떼거리로 몰려다녔다.
썰물이 아주 심하여 바다 바닥이 드러날 때가 더러 있었다. 바닥에는 크고 작은 돌멩이들이 뻘에 박혀 있었고, 뻘은 학습용 점토처럼 무척 새카맣고 찰져서 그걸 한 움큼씩 떠가지고 토끼니 사슴이니 사람 모형을 만들기도 했다.
흥미가 사라질 때쯤이면 온몸에 문질러 발라서 새까만 흑인으로 변장하기도 했다. 추장이니 뭐니 하며 장난치다가 흙탕물 속으로 머리부터 쳐 박아 풍덩 뛰어들어 허우적허우적 씻어내곤 했다.
지치거나 해가 지면 하나 둘씩 옷을 챙겨 입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저녁을 먹자마자 피곤이 몰려와 모기장 속으로 들어와 막 잠이 들 무렵이었데, 은식이 어머님께서 찾아오셨다.
“우리 은식이가 아직까지 집에 안 들어오는데, 너 혹시 은식이 어디 간 줄 아냐?”
“잘 모르건는디요. 같이 멱 감다가 내가 먼저 왔어라.”
같이 놀다가도 어느 참에 각자 사라지는 일은 늘 있어 왔다. 보이지 않으면 으레 집에 갔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다 낮에 같이 멱 감고 놀았다는디, 어디로 갔으까잉.”
은식이 어머니의 중얼거림은 벌써 울음 반이었다. 퍼뜩 집히는 게 있었다.
“은식이 어무니. 내가 올 때 갯돌밭에서 은식이 옷을 본 것도 같은디요.”
“워매, 거기가 어디라냐. 나랑 같이 가보자잉.”
아버지께서도 가정용 랜턴을 챙겨서 마당으로 나오셨다. 우리는 반 달리다 싶이 갯돌밭으로 갔다. 마음은 저만큼 앞서 달려가고 있는데도 어두워서 그런지 갯돌에 자꾸 발이 헛디뎌져 뒤뚱거렸다.
낮에 은식이 옷을 보았던 곳으로 찾아갔다.
“워매, 워매. 저그 우리 은식이 옷이랑 신발은 있는디 은식이는 어디 갔다냐?”
동네 사람들이 웅성웅성 몰려들기 시작했다. 바닷물은 갯돌밭 저 위만큼 차 올라와 있었고, 태풍 때문에 아직도 남아 있는 게으른 파도는 어둠 속에서도 흰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다니고 있었다.
어른들이 랜턴과 후레쉬 불을 비춰가며 갯돌밭 여기저기 뒤지고 다녔다. 밤바다에는 큰 불빛을 단 고깃배 두 척이 어둠을 몰아내려고 안간힘을 쓰며 출렁출렁 위태롭게 비추고 다녔다.
“은식아! 은식아! 어딨냐?”
은식이 아버지와 어머니는 목청껏 불러보지만 갯돌들이 으르렁대는 소리에 어느새 묻히고 말았다.
그때 어둠 속에서 누군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바다 밑 바닥에는 큰 돌멩이들이 뻘 속에 여기저기 꽉 박혀 있단 말시. 뛰어든다는 것이 거기다 머리를 박아부렀을까? 꾸정물잉께 안 보였을 거여, 아마.”
우리는 은식이를 끝내 찾지 못하였다. 조약돌마저도 어떤 언질도 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