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쌀을 이렇게 포기할 것인가
우리 쌀을 이렇게 포기할 것인가
  • 광양신문
  • 승인 2006.09.13 11:20
  • 호수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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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물결의 힘, 세계자본의 국경을 넘나드는 횡포는 강하고 줄기차다.  이런 흐름 속에서 금력(金力)이 때론 정치권력의 시퍼런 지배의욕마저 무기력하게 해버릴 수 있다는 교훈을 얻는다. 그러나 지배의 대상이 있는데도 정치권력이 완전히 패퇴하는  법이란 없다. 힘의 질서에 따라 잠시 기력을 잃어 보일 뿐이다.

매는 몰아서 맞는 편이 낫다 하였던가. 아직은 쓸 만한 칼자루를 쥐고 있는 여당은 어차피 이길 수 없는 선거 판세라 보았는지 보궐선거 정국을 틈타 빚진 이가 야반도주하듯 쌀 협상안을 국회에서 기습적으로 상정해 통과시켰다. 이해관계가 비슷한 거대 야당도 힘을 보탰다. 권력집단이 자기 정체성을 포기했다는 점에서 ‘정치권력의 공동화(空洞化)’ 또는 ‘정치권력의 자해(自害)’라 묘사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정치권력이 그 권력을 위임해준 이들의 생존권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그때의  권력이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영향력 있는 정치세력의 지원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약자들의 생존권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그러나 권력의 언저리에도 할 말은 많다. 다른 나라들과 협상을 벌이면서 우리농촌의 현실을 최대한으로 고려했으며, 시일 또한 촉박하기 때문에 협상의 이행을 위해서는  쌀 협상안의 국회 의결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것이다.
필자가 확인한 바로는, 쌀 협상안에 관한 한 정부는 그 이상의 환상적인 작품을 내놓을 수 없다고 쌀 협상과 관련된 관료들은 확신하고 있다.

무조건 쌀 시장 개방은 안 된다고 농민들이 억지 부리는 게 아니다. 농민들은 지금 정부와 국회가 우리 쌀값 하락에 대하여 분명한 대책도 세우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계획을 관철시키려는 데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정부 방침에 제동을 걸어주어야 할 국회마저 심도있게 토론을 하거나 쌀 개방 이후에 벌어질 농촌의 상황을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고 쌀  협상안을 상정하여 본회의에 넘긴 데 대해 분노하는 것이다.
정부가 추곡수매제를 없애는 대신 내어놓은 ‘공공비축제’와 '쌀 소득 보전직접지불제도' 에도 불구하고 ‘우리 쌀’ 값은 많게는 20%까지 폭락하고 있으며 쌀의 재고는 늘어만 간다.

지금 농촌은 수확의 기쁨 대신 ‘추궁기(秋窮期)’라는 역설의 현실을  맞고 있다. 생계의 압박에 머물지 않고 존재 의의마저  내놓아야 할 판이다. 하도 어처구니없어 울음마저 멈추어버렸다. 농민들의 얼굴에  자포자기의 분위기마저 읽힌다. 노동의 대가가 적절히 주어지지  않을 때, 아니 시간의 흐름과 함께 노동이 다시 투여되고 내일을  기약하는 익숙한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겨버렸다는 허탈감에 이르면  농민들은 존재의 의의는 찾을 수 없게 된다. 이는 노동의 대가인 쌀을 팔아서 생기는 돈의 많고 적음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다.

우리 민족에게 쌀은 주식(主食)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우리 논은 자본의 증식 수단이거나 단순한 작업장이 아니었다. 우리 쌀과 우리 논은 우리 민족에게 영욕과 고락을 함께 한 정서적 동반자로서  그 친밀함과 존재 의의가 우리 삶 깊숙이  스미어 있다. 우리 조상들은 생계의 수단만으로 절을 따라 그저 볍씨를 뿌려놓았던 것이  아니다. 땅을 잘 가꾸고 골라 볍씨를  놓고, 물을 다루어 우주의 순환에 기꺼이  동참했다.
'밥 님'을 ‘모시어 들여’ ‘살림’을 이어갔고 삶의 깊이를 다져갔다. 우리 논과  우리 쌀에서 우리 민족의 역사적·사회문화적 기호들을 읽어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 쌀과 이 땅의 소규모 논들은 지금 거대한 세계자본과 정치권력에 의해 거세될 위기에 놓여있다. 쌀 협상안은 이제 국회 본회의 의결이라는 절차만을 남겨두고 있다.
농촌 출신 의원들이  반대표를 던져주기를 바라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와  국회가 일방적으로 선전한 덕택에, 자본으로 바꿀 수 없는 가치들인 우리 쌀, 우리 논을 자본의 가치로 바꾸어 보는데 우리는 익숙해져가고 있다.

 쌀 협상안이 국회에서 의결이 늦어질 경우, 마치 온 나라가 큰 혼란에 휩싸일 것처럼 정부가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우리도 한몫 하고 있다.

농민들의 싸움을 우리의 그것으로, 우리 쌀과 우리 논의 위기를 우리(민족)의 존립과 정체성의 위기로 인식하는  일이 지금으로서는 어려워 보인다. 우리 쌀을 이렇게 포기할 것인가.
 
입력 : 2005년 11월 0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