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총과 빗살무늬 토기편 등 발견…고대 인류의 중요 유적지
패총과 빗살무늬 토기편 등 발견…고대 인류의 중요 유적지
  • 태인
  • 승인 2008.11.06 09:26
  • 호수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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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송림 전국 아름다운 숲 선정…향토문화유산 지정해야
 
광양신문이 이번 창간호부터 ‘우리마을 순례’를 연재합니다. 본지가 기획한 우리마을 순례는 읍면동 278개 마을의 지나온 과거와 현대의 변천과정, 생활문화 등 흐트러진 자료들을 찾아 현대를 조명 하고자 합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편집자 주
 
인류의 문화는 구석기시대에서 시작해 신석기시대로 이어지지만  인류의 문명을 말할 때는 신석기시대부터를 가리킨다. 신석기시대는 인류의 발달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창조적 발명을 한 시기다.
그것은 바로 토기의 발명이다. 토기의 발명은 인간 최초의 발명이다. 우리지역 돈탁마을이 바로 그런 곳이다. 패총은 널려있고 빗살무늬 토기편, 동물뼈, 패각 등이 수습된 곳이기 때문이다. 
 
거북이가 섬진강 물을 마시는 형국
우리지역 신석기시대의 보고인 돈탁마을은 둔덕에 자리한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섬진강변에 자리한 이 마을은 육안으로도 패총이 널부러져 있을만큼 마을 곳곳에 산재해 있다. 진월은 이마을 외에도 진정리 중산마을의 패총 터에서, 빗살무늬토기편과 동물뼈와 패각(貝角)등 신석기유물이 발견되었다. 따라서 이곳은 고대시대로부터 부족세력이 집단을 이루고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다음에 다룰 것이지만 여기서 잠깐 언급하고 넘어갈 것이 있다.

‘낱낱이 파헤친 고구려본기’ 등을 저술한 김종식 선생에 따르면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섬진강 하류로 추정되는 곳에 모래사장으로 띠를 두른 듯, 가라의 대사성(對沙城) 또는 다사진(多沙津)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돈탁과 사평, 구동마을 일대라고 추정하고 있는데 광양시도 이 부문에 관심을 가져할 것이다.
돈탁마을은 신석기시대 유물이 발견된 곳으로 기원전 4000년께 이미 사람이 살았던 마을이다.
 
기록에는 1600년 광양현 동면 월포리 지역이었다가 1700년에는 월포면에 속했다. 이후1789년에는 현월포면 전탁촌(全卓村)으로 불리다가 1872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이전까지는 광양군 월포면 돈탁리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오추, 사평과 함께 오사리로 명명돼 진월면에 편입되었다. 주요 성씨로는 금녕 김씨가 500여년 전에 이 마을에 정착했다 하며 지금도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전해오는 수원백씨가 이들보다 더 일찍 입촌했다는 얘기가 있지만 아직 확인된 것이 없다.

돈탁마을을 얘기할 때 ‘거북등’을 빼놓을 수 없다. 거북등은 ‘거북이가 강물을 마시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명명된 이름으로 현대에 들어서는 ‘거북동산’으로도 불린다. 이 거북등은 배가 불룩한 것처럼 둔덕을 이루고 있어 ‘돕데기’라 연유, 지금의 돈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돕데기’는 발음상 부르기 쉽게 연음화되면서 ‘돈테기’로 불렸고 또다시 한문으로 표기되면서 전탁(錢卓)-돈탁(敦卓)으로 이어졌다는게 지금까지의 정설이다. 그러나 마을 출신으로 광양경찰서장을 역임한 김성국 총경은 “원래 이름은 ‘돌튀미’였을 것이다. 마을에는 돌들이 여기저기 흩어진 황량한 곳으로 ‘돌터미’,‘돔태기’,‘돔택이’로 불리다가 한문표기를 하면서 ‘도타울 돈(敦)’, ‘높을 탁(卓)’으로 불리웠다”는 것이다.
 
거북등과 송림의 전설
역사가 깊은 마을이라 전설이 없을 리 없다. 거북등은 바위모양이 거북이와 흡사하다고 ‘영구(靈龜)등이’라 불렸다. 옛날 비가 오는 여름날 큰 거북이가 섬진강변으로 어슬렁 거리며 나왔는데 이때 마을의 한 처녀가 이를 지켜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 거북이의 움직임이 마치 산이 움직이는 것같아 깜짝 놀라 소리쳤다. ‘산이 움직인다’고 소스라친 것이다. 그러자 순간 거북이의 모습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산이 우뚝 솟았는데 영락없는 거북형체였다. 그 연유로 마을은 ‘거북등’이라 불리다가 지금의 돈탁이 된 것이다. 또 하나는 큰 거북이가 산에서 강변으로 내려와 목을 축이고 있는데 강 건너 하동쪽에 있던 큰 사슴이 거북이를 잡아 먹으려는 순간 거북동 북쪽의 총선등(총쏜등)에서 누군가 총으로 사슴을 죽였다.

이때 총에 맞아 목이 축 늘어진 채 죽은 사슴을 뒤로하고 총소리에 놀란 거북이는 산으로 변했는데 모습이 거북이었다. 이때 주민들은 푸른 청송을 심어 거북등이 안보이게 은폐했는데 지금의 송림이 그때 심어졌다고 전한다.
 
전국 아름다운 숲 선정은 광양의 자랑
중종23년(1528년)광양현감인 박세후가 광양에 부임해 각 고을을 순방하다가 돈탁마을에 이르러 마을 초입에 우거진 송림을 보고 기특히 여겨 산좌수려함에 매료돼 광양 8경의 하나로 지정하겠다고 했으니 그 아름다움에 짐작이 간다. 과거에는 수백 그루가 숲을 이루웠다고 하나 지금은 80여주가 마을의 경관을 뽐내듯 사계절 송죽처럼 그 푸르름을 더해가고 있다.

더욱이 돈탁마을 송림은 지난해 (사)생명의 숲 국민운동과 산림청, 유한킴벌리가 주최한 제8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마을 숲 부문에서 어울림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수목의 상태도 건강하며, 마을과 숲이 인접하여 주민들이 방풍, 휴양의 직접적인 혜택을 받는것이 수상의 배경이다. 또한 주민들의 관리와 이용에 애착이 남달랐고, 숲 속에는 작은 정자가, 숲 입구에는 주민들이 자력으로 만든 큰 정자가 잘 활용되고 있는 등 주민과의 관계성과 역사성이 우수해 마을 숲 개념에 잘 부합하는 최고 대상지”라는 평가였다. 광양시는 이곳을 향토문화유산으로 등록을 해 지역의 소중한 유산으로 보존하기를 권고한다.
 
마을단신
돈탁마을은 42농가에 122명(11월 4일 현재)의 주민이 살고 있다. 특작물은 양상추와 수박, 오이, 채소류, 재첩 등이다. 마을회관은 1993년에 현대식으로 신축했다.  1930년대에는 양조장이 있었다. 이 양조장은 정남택 진월면장이 운영했었다. 초대 정남택 면장은 망덕의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의 당시 소유자로 정병욱 교수의 부친이다.

1586년부터는 강건너 하동군 신월마을을 오가는 도선이 자리했다. 금녕김씨 선조로부터 운영됐으며 이후 박재기 씨가 이어 받았다가 선주가 계속 바뀌다가 한때는 일본인이 운영하기도 했는데 1970년경에 없어졌다고 한다.

주요 인물로는 △안남선(1925년생 서남장학회 설립 1999년 광양시민의상 수상) △정태업(1935년생 체신청 서기관, 부산체신청 감사실장, 부산우체국장 역임) △박수묵(1941년생 인천시 보건복지국장, 부평구청장 역임) △김종규(1942년생 광양시 초대 시의원) △안영칠(1944년생 제5대 전남도의원, 한국전자통신연구소 감사) △박봉묵(1947년생 광양시청 기획감사 담당관 역임) △김성국(1953년생 경찰청 교통 안전 담당관, 광양경찰서장 역임)  △허수형(1950년생 경기도청 서기관) △김용철(1955년생 국방주 서기관) △김관규(1946년생 숭실대 교수) △김종국(중소기업청 서기관) △김인규(1965년생 중국북경대 교수) △김신규(경영학 박사, 삼성연구실)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