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민과 농업인 교감하며 전통과 자연 빚어내는 곳
도시민과 농업인 교감하며 전통과 자연 빚어내는 곳
  • 귀여운짱구
  • 승인 2008.11.13 09:29
  • 호수 28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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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테마 마을은 우리 모두의 고향…옛 조상의 슬기와 지혜 터득의 장
 
옛 시절이 그리운 사람들은 도선국사마을에서 그 원인을 풀 수 있으리라. 그곳엔 옛 내음이 남아있는 까닭이다. 시인 이갑수는 ‘이제부터’라는 시에서 ‘되돌아 보면 지나간 것들은 모두 어디론가 숨었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머리카락까지 숨기지 못한 마을도 남아있을 것이니 우리는 그런 곳에서 향수를 맛볼 수 있다.

대도시 출신인 사람들에게도 향수는 있다. 태어나고 자라난 골목길에 대한 그리움이 직접적인 향수라면, 조그마한 둔덕에 기대듯 자리잡고 저녁밥 짓는 연기를 피워올리는 농촌 풍경은 원초적 향수를 대변하는 셈이다.
우리지역엔 아직도 그런 마을이 있어 우리의 마음을 적셔주고 있는데 도선국사마을로 불리는 상산마을이 그 중에 하나다.
 
 
농촌테마마을의 대명사 도선국사마을
 
평소 자주 찾는 곳이지만 막상 ‘우리마을 순례’를 위해 다시 찾은 상산마을은 도선국사마을로 불리면서 변화의 소용돌이를 체험하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현재의 상산마을은 지난 2002년 농촌테마마을로 지정되면서 그 옛날의 가난했던 전형적인 시골 마을을 뒤로하고 지금은 매 년 7천명의 체험객이 마을을 찾고 있는 등 그로 인해 일부 주민들의 주 소득원이 되면서 제2의 중흥기를 맞고 있다.
도선국사마을에 들어서면 관광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우선 오래된 약수터인 사또약수터에서 시원하게 약수 한 모금 마시고 나면, 먼 길을 오느라 허기진 관광객들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전통순두부집이 옹기종기 자리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곳에서는 큼지막하게 담겨져 나온 순부두와 도토리묵을 동동주 한사발과 함께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

특히 주말이나 휴일에는 인근 순천이나 여수 등지에서 샘물을 식수로 사용키 위한 행렬이 장사진을 이룬다. 그래서 약수터 옆에는 주민들이 손수 재배한 농산물이 직거래되고 있으며 손으로 직접 빚은 두부집이 4곳이나 생겨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나면 산내음을 물씬 맛볼 차례다. 건너편 백운산 자락이 한 눈에 들어오는 도선국사마을은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민박집들이 곳곳에 자리해 있고 마을 곳곳에는 오래된 우물터와 옛집 담장 등 옛 정취가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농촌체험은 마을의 백미다. 계곡의 맑은 물과 풍부한 일조량으로 맛과 향이 뛰어난 백운산 야생녹차(도선선차) 만들기와 다도체험 프로그램을 들 수 있다. 통일신라 말의 뛰어난 고승이자 한국풍수지리의 대가인 선각국사 도선이 마을 건너편 자락인 백계산 옥룡사에서 35년간 머무르면서 동백꽃과 더불어 야생차를 심었다고 전한다.

그 이후 명맥을 이어온 야생녹차를 이용해서 일반인들에게 다도체험의 좋은 기회를 마련해주고 있다. 관광객들에게는 야생 녹차 밭에서 찻잎을 따고, 체험장에서 수제 차를 만들어 다도를 배우는 체험을 통해 심신을 충전하는 기회가 되고 있다.
이밖에도 도자기 만들기, 전통 손두부 만들기,고로쇠 된장 만들기 체험 등 가족끼리 오붓하게 즐길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이 인기를 더하고 있다
 
 
도선국사 얼이 숨쉬는 마을
 
마을에서 만나는 할머니와 그의 아들, 모두 마을의 산천을 닮아 수더분하기 그지없다. 들려주는 얘기 역시 그저 담담한 숭늉맛이다. 뭐랄까, 이날은 체험객이 없어 산천도 사람들도 있는 듯 없는 듯 자연 그대로다.
이 마을엔 볼 것도, 배출한 인물도 없고, 딱히 특산물도 없다는 두 분의 말씀은 내게 꾸지람처럼 들린다. 난 지금까지 비상함을 찾아다니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비상함은 정상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현장도 아니었다. 다만 흥미있는 얘깃거리일 뿐이었다. 오늘 나는 천년을 뿌리내려 살아온 사람들을 만난 것이다.
도선국사마을의 신승균 위원장이 친절하게 들려준 마을 이야기는 흥미롭다. “우리마을은 옥탄금혈(玉女彈琴穴) 즉 선녀가 거문고를 연주하고, 옥녀배혈(玉女拜穴) 즉 선녀가 엎드려 절하는 명당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산세가 여인상이다.

신 위원장은 계속 이어나갔다. “우리 마을은 도선국사가 선덕을 베풀기 위해 집집마다 참배나무를 심어줬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지금은 한 그루의 참배나무가 고목으로 남아 있는데 이 배는 서리가 내릴 때 따서 땅에 묻어 조상의 제사와  자녀의 혼사에 쓰였는데 ‘일미리(一味梨)라고 불리는데 맛이 제일 좋다는 말이다. 또한 마을의 샘물은 항상 맑고 변함 없이 맛이 좋아 대대로 원님들의 식수로 사용돼 지금은 ’사또약수터‘라고 명명됐다”고 전한다.
 
우리 마을은…
 
양산마을의 옛이름은 산내(살래)이라고 불리고 있다. 문헌상에는 1789년 작성된 호구총수 에 내촌(內村)지역이라 표기돼 있으며 인근 추동이 본디 가라골, 가래골로 불렸는데 이는 산골이 갈라진 입구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이는 당시 산내지역은 상산 외산, 중산지역을 포함한 추산천 계곡 안에 있는 모든 마을을 통칭하는 마을을 의미한다. 이후 추산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추동리, 백학리, 상산리, 중산리, 하산리를 합쳐 ‘추’자와 ‘산’자를 따서 추산리가 되었다.
추산리의 맨 윗쪽에 있는 상산마을의 설촌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신라하대 한씨, 나씨, 정씨, 탁씨가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산내(상산)는 1789년쯤부터 부르던 이름으로 일제시대 아래에 있는 중산과 합하여 행정상 양산이라 불리우며, 주민은 총 60여세대로 밤, 감, 매실, 벼, 보리, 축산업 등에 종사하고 있다.

주요 인물로는 △나상균(1926년생 광양축협조합장 역임) △이윤하(1933년생 담양·장흥·광양군수) △이금하(1939년생 옥룡면장 역임) △이은상(1958년생 광주광역시청 사무관) △나용수(1960년생 SK텔레콤 상무)△정신현(1960년생 (주)오렉스 대표) △신윤균(1966년생 경찰청 경정)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