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체벌 옹호론을 반박함
학생 체벌 옹호론을 반박함
  • 강 석 태 새삶교육문화연구원 대표
  • 승인 2008.12.24 20:37
  • 호수 29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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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석태 새 삶 교육문화연구원 대표
최근 한 용감한(?) 현직 중견 여교사가 학생 체벌을 금하는 교육방침 때문에 학교가 무법천지가 되었다고 하면서 체벌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실은 책(책 제목: 지금 6학년 교실에서는...)을 써 교육계를 흔들고 있다. 먼저 이 글을 쓰는 내 소견부터 밝히면 그 교사의 주장에 난 반대한다. 나는 철두철미 학생체벌 반대론자이다.

그 책을 쓴 김 모 교사는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을 우습게 아는 5%가 교권에 공공연히 도전하고 20%의 ‘건들건들’ 파가 여기에 가세하며 학교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여기에 또 영향력 있는 15%의 열쇠파가 가세한다면 그 반은 통제 불능의 무법천지가 된다.’ 그러면서 그는 ‘왜 그럴까?’라고 자문한 다음 그 무법천지를 만들게 한 원흉을 ‘교사들의 “정상적 교육활동”을 막은 첫째 족쇄인 “체벌금지 규정”이라고 진단한다.

나는 여기서 그 김 모 교사의 교육자로서의 자질을 의심한다. 그러면서 30여 년 교직에 있었다니 어이가 없다.

첫째 한 학급 아동(그는 초등학교 6학년생을 가르치는 영어교사이다)의 5%가 선생님을 우습게 안다고 한다. 왜 그럴까를 생각해 보았는가? 그 5% 학생은 교사의 가르침을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 부류일 것이다. 그 학생들의 영어 회화 실력이 아마도 교사 자신보다 더 높지 않을까? 그 중에는 유학파도 있을 것이고, 유아 때부터 개인교사 또는 학원에서 영어를 공부한 아이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교실의 공부가 단지 시간 낭비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겐 원어민 영어교사가 아닌 ‘토종’교사가 우습게 비칠 것이다. 이것은 저들 아이들의 잘못도 아니며, 더더구나 교사의 잘못도 아니다. 이와 같은 교육 풍토를 조성하고 있는 대한민구의 영어교육정책의 죄이다.

다음으로, 그들이 공공연히 ‘교권’에 도전한다는 것. 교권이란 무엇인가? 문자적 해석은 교사로서의 권위나 권력(그랜드 국어사전)이다. 여기서 교사로서의 권위는 무엇인가? 학생으로 하여금 스스로 잠재능력을 개발하도록 돕는 일을 맡은 역할이다. 하드 파워가 아닌 소프트 파워, 곧 따뜻한 햇볕을 쪼이게 해서 외투를 벗기는 이솝의 우화에 나온 해님의 사랑이다.

이것을 망각하고서 억센 폭풍과 같은 몽둥이로 벌을 줘서 길들이면 영어를 잘 배우고 우수한 학생이란 말인가? 그 다음 건들건들파 학생들이나 열쇠파 학생들은 도대체 영어시간에 배우는 영어를 어디다 써 먹을 것인가라는 의문을 항상 품고 있을 것이다.

그들 모두가 중학교에 진학은 하겠지만, 영어회화를 미국 원어민 수준에 도달되기까지 시간과 정력을 쏟아가며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이 아이들에게는 도무지 영어 회화란 것이 시험을 치른다는 강박관념 외에는 아무런 당위성이 없다. 영어는 미국인이면 거지나 유치원 아이들도 좔좔좔 지껄이는 그들의 언어이지 않는가. 그런데도 우리 아이들에게 원어민 수준의 발음, 문법, 언어 구사 능력 등을 강요하는 교육을 모든 학생이 어떻게 따라 가란 말인가?

그런데 이것을 바로잡으려고 체벌을 하면 가능할까? 물론 매로 때리고 몽둥이로 치면 아이들은 복종하고 조용해질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 시대착오적 사고이다.

지금이 19세기인가? 20세기를 넘어선 21세기이다. 금년이 UN이 인권선언을 한 지 60년째이다. 그리고 우리는 선진국을 향해 전진하는 사회의 시민이기를 염원한다. 그리고 우리 후세들을 선진사회의 시민으로 길러야 할 책임이 있다. 이것을 맡은 분야가 교육이며, 그를 위해 봉사하는 직업이 교원이다

교사와 학생 사이는 권력이 지배하는 사이가 아니다. 권위는 있으되 신뢰에 바탕 한 상호 존중의 관계라야 한다. 사랑과 존경이 오가는 사이여야 한다.

이제는 교사나 학부모가 달라져야 한다. 교사는 모름지기 하드파워인 권력에 의존하려 하지를 말고 소프트파워를 개발하는데 힘써주기 바란다. 학교 교육은 결코 교도소나 삼청교육대나 신병 훈련소가 아니다. 학교의 영어 School의 그리스 원어 Schole는 ‘여가’라 한다.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동등한 자리에서 한가로이 삶을 즐기면서 토론하면서 진리를 찾는 활동의 마당이었다. 진리는 무엇인가. 인간 본연의 모습이다. 그것은 자유이다. 자유를 억압당하면서까지 지식을 습득한 들 그것이 인간에게 무슨 의의가 있단 말인가?

의견에 반론을 제기할 분이 적지 않을 줄 안다. 아마 그들 대부분은 어려서 가정에서, 그리고 학창시절에 매를 맞으며 자란 경험이 있는 분일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그것을 후손에게 대물림해야 할 갸륵한(?) 의무감일랑 부디 갖지 말기를 바라면서, 시간을 내어서 <사랑의 매는 없다> (앨리스 밀러 지음/ 신홍민 옮김/ 양철북 폄)를 일독하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