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종렬목사 / 마하나임커뮤니티교회 평소엔 검은 돌들 사이로 졸졸 흐르던 냇물이 장마나 소나기가 올때면 금새 불어나 붉은 물줄기가 됩니다. 때론 밤새도록 양철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에 비가 많이 온다는 것을 간간히 느끼는 아침엔 이전에 볼 수 없는 붉덩물(흙이 씻겨내려오는 붉게 물든 물을 그렇게 불렀습니다)이 거대한 뱀처럼 꿈틀거리며 물안개를 뿌옇게 뿌리며 내려옵니다. 그렇게 많던 돌들은 간간히 큰 바위의 윗등만 보일정도로 물이 차오르고 평소엔 냇가로 내려가던 길로 쓰던 곳도 어느새 물이 넘실대곤 했었지요. 집과 학교를 가던 곳에는 냇물이 있었습니다. 그 냇물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이 행정구역상으로 나뉘어 내동, 내서리라고 이름하였지요. 그곳에 큰 다리가 하나 있었습니다. 오래 전 일본사람들이 놓았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후에 만들었다는 소리도 있었지만 하여간 어릴적 기억으론 정말 크고 긴 다리였습니다. (지금 가보면 너무도 작아 보이지만) 기다란 중간 벽으로 된 기둥이 두개가 있었고 다리 난간에는 50여센티정도 되는 높이로 난간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평소에 잠자리도 잡고 그 난간 위로 걸어가는 것으로 서로의 담력을 가늠하기도 했던 그런 곳이지요.비간 여간 많이 와도 이 다리는 잘 넘지 않았습니다. 우리들 맘이야 많이 와서 이 다리 못건너 학교에 안가는 것을 바랬지만 정말 많이 올때 한 두번 정도 넘은 기억 외엔 거의 없었지요. 붉덩물이 내려오는 그때에 이 다리위를 지나가는 것은 여간한 용기가 없인 힘들었습니다. 물이 새차게 지나가는 그 다리 위를 지나가면 마치 다리가 빠르게 위로 움직이는것처럼 느껴져서 현기증이 날 정도였기에 어린 아이들이 그곳을 건너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간신히 형들의 손을 잡고 가까스로 건너긴 했었지요.그런데 그보다 더 무서운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난간으로 가서 흐르는 물을 바라보는 것이었지요. 다리 난간에서 빨려 들어갈 듯 세차게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는 일은 아무나 쉬이 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물론 어른들이야 상관없었지만….다리 한가운데로 지나는 일에서 그 난간으로 나가는 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지난 뒤였지요. 처음으로 그 난간을 부여 잡고 철벅 철벅 다리를 치는 물이 다리 위까지 올라오는 것을 보고 뿌연 물안개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치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타이타닉이란 영화를 보면 주인공 둘이서 배의 제일 선두에서 팔을 벌리고 마치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하는 명장면이 있습니다. 다리 위에서 흘러가는 물을 볼 때 아마 그런 느낌이었지 않을까 싶었지요. 그렇게 한참이나 물을 바라보고 현기증을 느낄 정도가 되면 얼른 다리 한가운데로 물러서기도 하고 그 자리에 주저 앉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다시금 그 짜릿한 놀이를 위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기도 했었지요. 두려움이 가신 뒤로 그 일은 아무때나 경험할 수 없는 정말 신나는 놀이였지요. 하지만 그 두려움을 뛰어 넘기까지는 두근대는 가슴을 여러번 쓸어 내려야 했었습니다. 어른이 되어도 가끔은 그런 두려움을 극복해서 새로운 일들을 개척하며 나아가야 할 때가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두려움과 기우를 벗어 버리는 일이 결코 쉽지 않지만 그것을 극복하지 않고는 경험할 수 없는 많은 기회와 일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현실에 대한 안주와 새로운 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기회를 묵과할 때 우리는 많은 것을 얻거나, 경험하거나 알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을 압니다. 도전 없이 지금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때로 새로운 세상이 보인다면 우린 그 두려움의 울타리를 과감히 유월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안일한 만족과, 나태와, 자기위안과, 모든 익숙한 것을 넘어서서 말입니다. 입력 : 2005년 07월 21일 저작권자 © 광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양신문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