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도 잘 활용하면 멋진 예술이 되죠”
“쓰레기도 잘 활용하면 멋진 예술이 되죠”
  • 정아람
  • 승인 2012.08.27 09:38
  • 호수 4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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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물건 모아 작품 만드는 이택기 씨

 

광양 공립 노인 병원 들어가는 입구에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약국’ 건물이 하나 있다.

밤이 되면 귀신이라도 나올 것처럼 자칫 으스스할 법도 한데 건물 주변에는 음산한 분위기와는 달리 생명이 꿈틀거리고 있다.

진돗개 한 마리와 작은 강아지 그리고 고양이 등 9마리의 동물이 이곳에 살고 있다.  

‘누가 키우는 것일까?’…가만 들여다보니 뒤에서 기척이 난다.

“개님아~밥 먹자” 정답게 부르는 것이 영락없는 아빠의 모습이다. 가만히 앉아있던 강아지와 고양이가 재빠르게 아빠를 알아보고 꼬리를 흔들고 달려간다.

까맣게 탄 얼굴과 마른 체격에 환자복을 입은 한 남자. 이택기(57) 씨가 이 동물들을 보호하고 있는 주인공이다.

노인병원 환자인 그가 이 곳에 입원한 지 올해로 18년이 됐다. 광양읍에서 살던 이 씨는 젊었을 때 노동을 하며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던 중 고혈압을 앓게 된 것.

외로움 이기게 해준
‘개ㆍ고양이ㆍ채소’

 

병원에서의 무료한 삶과 외로움은 고혈압보다 더 큰 병이었다. 이 씨는 “혼자라는 외로움이 고혈압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그의 삶은 매일 똑같았다.   

하루 종일 하얀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있기도 싫고 작은 상자 안에서 떠들어 대는 텔레비전 소리도 시끄러웠다.  그저 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면 미친 듯이 일을 하는 하는 것이라고. 

“그땐 알지 못했죠. 일이라는 것을 먼 훗날 이렇게 그리워할 것이란 걸”하고 얕은 한 숨을 내뱉었다.

그렇게 깊은 외로움의 병을 치료해준 건 바로 노인 병원 식당 직원들과 간호사들. 쓸쓸히 지내고 있던 이 씨에게 어느날 강아지 한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를 선물 한 것.

그의 인생은 그 날부터 무지개가 뜨기 시작했다.

동물을 키우면서 애정을 듬뿍 쏟기 시작했고 하루하루 강아지와 고양이가 커가는 기쁨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처음 한 두 마리였던 것이 이제는 9마리로 식구가 부쩍 늘었다. 이 씨는 “하루 일과가 쟤네들(동물들)때문에 활기차다”며 “동물이 아닌 나의 소중한 가족들이다”고 연신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개와 고양이를 키우고 나니 이제는 채소를 가꾸는 기쁨도 생겼다. 텃밭 전체는 그의 행복을 먹고 사는 것처럼 싱그럽다. “제 땀으로 키운 것 들이예요” 호박, 고추, 상추를 보며 지금 막 태어난 아기를 품에 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버려진 물품을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

이런 그에게 또하나 취미가 생겼으니 바로 쓰레기를 재활용해 다양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건물을 반 바퀴 돌아 뒤로 가보니 철장 사이로 문이 있다.

이 씨를 따라 들어간 그 곳에는 때묵은 추억의 냄새가 코를 자극 시켰다. 얼핏 보면 쓰레기 창고 같기도 한 건물이 그를 만나니 보물 창고가 됐다.

잡동사니들이 즐비한 창고는 그가 가장 아끼는 작업실이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작품이 된다”며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 씨가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 지는 1년 전.  병원에서 사용하던 크리스마스트리가 버려진 것을 보고 아까워 ‘저 트리로 작품을 만들면 어떨까…’ 라고 생각 한 것.

“크리스마스트리는 보통 1년 중 2~3달 정도 사용하고 버리는 경우가 태반이다”며 “하지만 크리스마스트리로 만든 내 작품은 영원히 변치 않는다”고 말했다.

작품이 되는 재료는 정말 간단하다. 철사, 신문지, 버려진 쓰레기 그리고 나무색을 만들어주는 커피만 있으면 된다.

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인생에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작품을 만드는 요즘은 정말 특별하다고 생각한다”며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이씨가 지금 껏 만든 작품은 항아리, 분재 등 20여점. 한 땀 한 땀 어느 작품 하나 정성을 들이기 않은 것이 없다.

그의 작품을 제일 먼저 인정해주고 그를 응원한건 다름 아닌 노인 병원 임직원들. 임직원들의 권유로 지난 5월 병원에서 전시회를 한 적도 있다. 작품이 좋아 구입하는 손님도 있다고 한다.

이택기 씨는 “동물을 키우고 채소를 가꾸며 작품 활동 까지 하게 되니 더없이 기쁘다”며 “앞으로도 많은 작품을 만들고 지금처럼만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며 미소를 가득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