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 길을 걷다<32>
연중기획 - 길을 걷다<32>
  • 이성훈
  • 승인 2018.01.12 18:34
  • 호수 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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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아래 햇살 가득 품은 예절의 고장…‘옥곡 장동마을’

차가운 겨울바람도 따사로운 햇살은 이기지 못하리라

 

광영에서 옥곡 삼거리를 바로 지나 왼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장동마을이다. 옥곡면 장동마을은 뒤에는 가야산이어서 광영동과 연결된다. 마을 입구에는 여기가 장동마을임을 알리는 커다란 표지석이 있는데‘예절의 고장’이라 새겨져있다. 도대체 무엇이 있기에 장동마을은 예절을 강조하는 것일까. 마을 입구에 차를 세우고 마을로 들어가면 장동2구회관 바로 옆에‘쌍효문’(雙孝門)이라는 기와집과 집 안에는‘쌍효려비’가 보인다. 

쌍효려비는 효자효부 두 사람의 효행을 기리는 비로 고종 29년(1892년) 조정에서 정려(旌閭)를 내리면서 동몽교관(童蒙敎官)의 증직을 받은 전주 유씨 유계양(柳季養)과 숙부인의 증직을 받은 해주오씨(海州吳氏)의 효행을 기리는 정려비다.

1929년 손자 오위장과 옥곡초등학교 건립에 공이 많은 유채규가 건립하였으며 그 이후 정각 및 주변을 보수 정비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문이 닫혀 있어 내부는 정확히 들여다 볼수 없었지만 마을에 이렇게 의미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이 장동마을 주민들에게는 커다란 자부심이 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장동마을 입구에는 종묘, 조경 산업과 관련된 광고가 있다. 과연 이 마을이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기에 조경업이 발달되어 있을까 의문이었는데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답을 찾았다. 장동마을은 이른 아침부터 해를 마주하는 양지바른 곳이다.

광양에서 첫 눈이 내렸던 10일 다음날 오전에 장동마을을 찾았는데 아침부터 마을을 비추고 있는 해로 인해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가야산을 타고 내려오는 겨울바람은 얼굴을 사정없이 휘갈기며 매섭기만 한데 따사로운 햇볕이 가는 길을 온통 비추고 있어서 길을 걸을때마다 등 언저리에는 열기로 후끈하기만 했다.

햇볕이 좋다보니 장동마을은 조경은 물론 과수도 많아 보였다. 여기에 마을 한가운데 실개천이 흐르고 저 멀리에는 저수지도 있으니 장동마을에는 가만히 있어도 풀과 나무는 튼튼하게 자랄 것만 같다.    

낯선 마을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경계하는 것이 바로 개다. 집집 곳곳에 키운 개들은 발자욱과 냄새가 낯선지 여기저기서 으르렁 거리는 소리가 끝이 없다. 하지만 주민들은 낯선사람에 대해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쌍효문을 지나 좀더 위로 주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마을을 한아름 품고 있는 노거수가 보인다. 한 자리에서 400년 이상 마을을 지켜온 푸조나무다. 푸조나무는‘곰병나무·팽목’이라고도 불리며 줄기가 곧고 넓게 퍼지는 것이 그 특징이다. 겨울이라 그런지 잎을 모두 털어내고 웅장한 몸매만 유지하고 있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해 심야에 이 나무 부근에서 이상한 울음소리가 바람결에 들리기 시작해 사람들이 나무 아래로 가보았는데, 팽나무 우는 소리가 틀림없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나무 아래로 모이자 갑자기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분명 재앙이 닥칠 것을 미리 예고 해주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을 무렵, 아니나 다를까. 왜병들이 마을을 향하여 쳐들어오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들을 보고 크게 놀랐으나 왜병들은 오히려 자기들이 오는 것을 미리안 사람들이 나무 아래 모여 있다고 생각해 후퇴해 버렸다.

수일 후 왜병들은 다시 이 마을을 급습해 제일 먼저 이 나무 아래 진지가 있었다고 생각해 나뭇가지를 잘라냈는데 잘려진 나뭇가지가 땅에 떨어지면서 나무 아래 있던 왜병들이 모두 깔려 죽고 말았다. 이 일로 인하여 왜병들은 다시는 이 마을에 들어오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일이 있은 후,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당산목으로 모셨으며 질병이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이 나무에 비는 풍속이 생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을 위기상황에서 여러 번 지켜낸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만큼 그 형상 또한 마을길을 굽이 내려다보고 있는 듯하다.

골목길 곳곳에는 슬레이트 지붕이 많다. 광양시는 해마다 슬레이트 지붕 철거를 지원하고 있는데 장동마을에도 개선해야 할 곳이 많아 보인다. 과거 예비역들이나 돈없는 동네 아저씨들에게‘슬레이트’는 색다른 추억이었다. 마을이나 캠퍼스 뒤편 허름한 공간에서 고기 파티 할 때면 후라이팬이나 구이철판 대신 공사판에서 주어온 슬레이트 지붕이 고기 굽는데 안성맞춤이었다.

슬레이트 지붕을 대충 씻은 다음 불 위에 놓고 삼겹살과 목살을 구워먹으면 기름기 쫙 빠진 고기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쌈도 필요 없었다. 쌈장과 소주만 있으면 여럿이서 슬레이트 불판위에 지글지글 구워지는 돼지고기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슬레이트가 석면덩어리임을 나중에 알고 난 후 뜨끔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장동마을 길을 따라 올라가면 가야산 불광사가 보인다. 불광사 언저리에서 내려다보는 장동마을은 참 평화롭다. 저 멀리 남해에서 바로 앞 저수지 그리고 골목길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 논과 밭에는 참새들이 떼지어 다니고 나무에 끝까지 매달렸다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져 삶을 마감한 홍시들…햇살 가득한 장동마을에 이런 평화가 오래오래 유지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