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그래도 봄은 왔다
기고 - 그래도 봄은 왔다
  • 광양뉴스
  • 승인 2021.03.26 17:43
  • 호수 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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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봉애
시인·문화관광해설사

 

그래도 봄은 왔다

봄비 내린 뒤 꽃들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긴 겨울 힘겹게 버티고 버텨온 시간들을 보상이라도 받은 듯 꽃들은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렸다.

봄까치꽃, 광대나물, 얼레지, 바람꽃, 민들레…, 저마다의 이름표를 달고 세상 밖으로 나와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한 봄꽃들, 그들의 시계를 돌릴 수 없지만 한 송이의 꽃을 피우기 위해 지난겨울 나름의 방식으로 다져가며 살아왔을 것이다.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던 지난겨울 우리는 갇혀버린 일상을 저울질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불신의 벽을 쌓아갔던 우리의 시계추를 멈춰버렸던 시간들이었다. 멈춰버린 것은 시간뿐만 아니다. 관계와 소통 사이를 단절하며 그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코로나19는 우리의 일상을 멈춰버렸다. 암울하고 혹독한 시간을 지나오면서 간절히 바라고 절규했던 소소한 일상이 몹시도 그리웠다.

늘 우리에게 주워진 일상들이 당연한 것처럼 때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사용하고 팽개치면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마스크를 벗고 친구와 수다를 떨고 그리운 이들과 삼겹살에 소주를 한잔을 돌리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들어주고 나누고 싶은 그런 날들이 몹시도 그립다.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앞 내용을 받아들일 만 하지만 그럴 수 없거나 그렇지 않음을 나타낼 때 쓰여 앞뒤 어구나 문장을 이어 주는 접속어이지만 삶이 힘들고 지칠 때마다 자주 쓰곤 했던 그래도 라는 섬을 나는 좋아한다.

“그래도 잘 될 거야, 그래도 괜찮아, 그래도 이만하기 다행이야,”이렇게 내 마음속에 자리한 그래도라는 섬은 항상 희망의 섬이었고 긍정의 섬이었고 낯섦보다는 설렘을 주는 섬 하나를 꿈꾸며 살아왔다.

몇 해 전 9시 뉴스 앵커가 소개했던 그래도 라는 시 한편이 가슴을 찡하게 울린 적이 있었다. 그 시는 김승희 시인의‘그래도라는 섬이 있다’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삶이 힘들 때마다 나는 이 시를 읊조리며 내 안에 그래도라는 긍정의 섬 하나를 키워오며 살아왔다.

“세상의 어느 지도에도 알려지지 않은 섬,

그래서 더 신비한 섬,

그래서 더 가꾸고 싶은 섬, 그래도

그대 가슴속의 따스한 미소와 장밋빛 체온

이글이글 사랑에 눈이 부신 영광의 함성

그래도라는 섬에서

그래도 부둥켜안고

그래도 손만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강을 다 건너 빛의 뗏목에 올라서리라,

어디엔가 걱정 근심 다 내려놓은 평화로운

그래도, 거기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 김승희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중에서 -

모두들 힘들고 어려운 시기지만 서로를 부둥켜안고 손만 놓지 않는다면 평화로운 섬 그래도에서 우리는 꼭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운 이들과 수다를 떨고 그동안 아껴두었던 이야기꽃을 피우며 그리웠던 일상으로 돌아갈 그래도라는 섬이 멀지 않았음을 알기에 버티고 버텨내야 하는 것이다. 지도에는 없는 섬, 그래도 봄은 왔다.

<외부 기고 및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