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유리산누에나방 애벌레와의 한집 살이 [열두 번째 이야기]
[기고] 유리산누에나방 애벌레와의 한집 살이 [열두 번째 이야기]
  • 광양뉴스
  • 승인 2021.04.16 17:35
  • 호수 9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순심 숲해설가(숲마루)

3월, 내 집에 뜻밖의 세입자가 생겼다. 그것도 하나도 아닌 둘이다. 알에서 깨어난 2마리 유리산누에나방 애벌레와의 한집 살이. 애벌레가 내 생애 첫 반려동물이 된 기막힌 시간이 36일째 흐르고 있다.

2년 동안 유리산누에나방과는 인상적인 두 번의 만남이 있었다. 1년차 시절 늦가을 고치가 달린 참나무 아래서 암컷 유리산누에나방이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녀석은 가을에 우화하면 바로 페르몬을 방출해 수컷을 불러들이고 교미가 끝나면 곧바로 자기가 나온 고치나 나무에 알을 낳고 성충의 짧은 삶을 마감한다.

또 한 번은 작년 7월 백운산 도솔봉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막 고치 만들기를 시작하는 녀석을 만났다. 여러 나뭇가지를 오가며 고치 만들 장소를 물색하다가 안전하다 싶은 장소를 선택했는지 나뭇가지에 초록 고치주머니 자루를 힘겹게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녀석이 갑자기 작업을 중단하고 잎 뒷면으로 숨더니 꿈쩍도 안 한다. 나에 대한 경계심 때문이었을까. 녀석이 언제 다시 시작해서 언제 끝낼지 모를 작업을 지켜보기에는 해 질 녘의 어스름해져오는 주변 공기가 무서워 그냥 자리를 떴다.

그리고 10일 후 그곳에서 녹색연합 생태동아리 보수교육을 진행하기로 한 날이라 미리 현장 확인도 하고 녀석도 확인할 겸 새벽 일찍 가보니 주머니 자루를 만들던 딱 그 자리에 멋진 초록 고치를 만들어 놨다. 일주일 후 녀석과 고치는 나방애벌레 동정에 도움을 받고 있는 나방선생님을 따라 광주로 갔고, 11월 어느 날 우화에 성공해서 광주에 있는 산에 방생됐다.

녀석의 고치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었던 기회를 날려버린 아쉬운 경험이 이상하게 새로운 기대와 설렘으로 다가왔다. 유리산누에나방이 나에게 자신을 온전히 보여주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 이런 말을 들으면 나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겠지만 동료 선생님들은 거의 인정하는 편이다. 그런 비슷한 경험을 하는 나를 가까이에서 종종 보았기 때문이다.

그 기대와 설렘이 고치에 달린 4개의 알로 실현됐다. 2월 7일, 백운산에서 길 없는 길을 걷다가 숲 바닥에 떨어진 유리산누에나방 애벌레의 알이 4개 붙어 있는 고치를 발견했다. 반가움에 고치에 붙은 것이 진짜 알인지 몇 번을 확인했다. 분명한 녀석의 알이다.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4개다. 이제 애벌레도감을 넘길 수 있게 됐고, 숲에서는 애벌레를 데리고 놀기도 하지만 과연 집 안에서 기를 수 있을까 심각하게 고민을 좀 하긴 했지만 다시 오지 않을 선물 같은 기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집으로 데려왔다.

3월 10일, 12일, 13일 3마리가 차례로 알에서 깨어났고 한 마리는 광주 나방선생님에게 분양하고 나머지 두 마리를 각각 36일째, 34일째 키우고 있다. 4월 11일 다섯 번의 허물을 벗었다. 애벌레도감에는 4번으로 나오는데, 내 관찰로는 5번이다. 이제 고치 만드는 일이 남았다. 고치를 만들고 그 안에서 마지막 허물을 벗고 번데기가 되어 두려움과 희망을 안은 채 긴 침묵의 시간을 보내고, 날 좋은 어느 가을날에 날개돋이를 하고 산란까지 한다면 녀석들의 온전한 한 살이가 끝난다.

세 번째 허물을 벗고 나서 애벌레들의 몸 색깔에 차이를 보였다. 자연에서 자주 발생하는 단순 변이인지 아님 암수의 차이인지 그걸 모르겠다. 암수 차이라면 그 다음 허물벗기에서도 계속 차이를 보였을 것 같은데, 네 번째 허물을 벗고 나서는 약간의 차이를 보였고, 다섯 번째 허물을 벗고 나서는 완전히 똑같아졌다. 그것이 자연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변이가 아니라 암수 차이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러면 날개돋이 후 둘이 짝이 되어 산란까지 하는 환상적인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벌레들을 기르는 동안 놀라운 경험들이 많았다. 허물벗기 전 1시간 이상의 진통과 머리와 가슴다리 1쌍이 단단한 헌 피부를 뚫고 나오는 힘겨운 첫 몸부림. 다 됐다 싶었는데 이게 웬걸 꼬리다리가 좀처럼 나오지 않아 애를 먹는 모습. 그렇게 몸이 다 빠져나오면 1시간 이상의 긴 잠에 빠져들고 그 사이 몸에 새로운 색깔이 입혀진다. 잠에서 깨면 제 허물을 먹고, 또 한참 잠이 들고, 다시 잠에서 깨면 그제야 잎을 먹고 똥을 싸고 또 잠이 든다.

두 마리 애벌레들이 고치를 만들고 그 안에서 긴 침묵을 끝내고 성충이 되어 나올 때, 녀석들이 내게 보여준 놀라운 경험에 대한 답례로 줄 관찰일지라도 정리해야 할까보다. 지금 마음이 그렇다는 거지 될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