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줄 같은 잣대들
고무줄 같은 잣대들
  • 광양뉴스
  • 승인 2022.01.21 17:36
  • 호수 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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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삶

김양임

·광양YWCA 이사

· 국방부 / 여성가족부 양성평등교육 진흥원 전문강사

 

얼마 전 모 방송국에서 공개한 김건희 씨와 기자의 녹취록에 대해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오늘은 속칭 ‘미투’라 불리는 젠더이슈에 대한 그녀의 발언에 대해 확대경을 가지고 접근해 보고자 한다.

(피해자들은 목숨까지 걸었던 처절한 미투에 돈을 거론하는 천박함이란...)

김지은 씨에 대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범죄 건은 이미 법적인 절차가 종결되었음에도, 일부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진행형인 듯하다. 논란의 핵심은 소위 ‘성인지감수성’의 주관성과 ‘피해자 중심 판결의 당위성’에서 비롯된다.

어떤 이들은 김지은 씨가 겪은 성범죄와 더불어 2차 피해 및 백래시에 주목하고, 어떤 이들은 그녀의 진정성에 주목하는 것이다.

지난 몇 년을 돌아보면 공교롭게도 젠더 이슈는 보란 듯이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오거돈 전 부산광역시장 등 여당 인사들에 집중되었고, 그 밖의 야당 인사들의 성비위 사건들은 그 사실관계가 어느 정도 명확한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보수와 진보에 대해 시민들이 무의식적으로 내면화하고 있는 도덕적 잣대의 상이함이나, 정치적 레토릭으로 변질된 페미니즘을 성토할 의도는 없다.

다만 아직 한국사회에서는 젠더 이슈, 페미니즘, 성인지감수성 등에 대한 성평등의 개념들이 마치 다 익지 않은 계란프라이처럼 아직 명확하게 양생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는 것이다.

야당 후보가 공약인지 낙서장인지 불분명하게 SNS에 아로새긴 일곱 글자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어쩌면 마치 늘렸다 줄였다 하는 고무줄과 같은 모호함이 장기적으로 이어지는 것에 대한 피로감의 표출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조차도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페미니즘이 지닌 속성이라 하니 말이다.

고의성 여부를 떠나, 김건희 씨는 바로 이러한 시점에 ‘미투 운동의 진정성’에 대한 화두를 던졌고, 이는 익지 않은 계란프라이를 휘휘 저어버리는 꼴이었다고 볼 수 있다. 덜 익은 계란프라이는 휘휘 저어서 ‘스크램블 에그’라도 만들 수 있지만, 사회 구성원 간의 갈등으로 확산될 양상을 보이는 개념을 이같이 함부로 다루는 것이 과연 적절했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수 만 명에 육박하는 본인의 팬클럽이 생긴 것을 보고 흐뭇해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여하튼 이 사건을 두고 설왕설래하는 이들과 파생되는 양상을 가운데 한 인물의 모습에 주목해 본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비단 범죄심리전문가를 넘어 본인의 분야에서 묵묵히 살아남은 페미니스트의 이미지도 구축하고 있었다.

공동선대위원장으로서 취했던 각종 스탠스는 과거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 당시 미래통합당측에서 활동했던 전력을 비추어봤을 때 놀랄 만한 일이 아닐지라도, 중앙선대위의 여성본부 고문직을 수행하는 상황에서 김건희 씨의 발언에 대한 반응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의문이다.

발언 당사자와 그 남편인 야당 후보도 아닌, 본인이 김지은 씨에게 사과를 하는 것이 피해 당사자에게 얼마나 큰 호소력을 발휘할지 과연 계산하지 못했을까?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 당시 여당이 사용했던 ‘피해 호소인’이라는 단어 하나에도 대노했던 것으로 보아 공감능력 내지 성인지감수성이 부족한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런 그녀의 다중잣대에 이목이 집중된 것은 대중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본인은 페미니스트를 자처한 적이 없다고 하는 손쉬운 방법도 있겠지만, 그것은 자신에게 이미 실망한 대중들, 특히 자신의 팬임을 자처했던 페미니스트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