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준 기자의 맨발 걷기 체험기] 대한민국에 불어닥친 ‘열풍’…맨발 걷기가 뭐길래
[김성준 기자의 맨발 걷기 체험기] 대한민국에 불어닥친 ‘열풍’…맨발 걷기가 뭐길래
  • 김성준 기자
  • 승인 2023.11.06 08:30
  • 호수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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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걷기 힘들지만, 건강에 좋은 것 같아
백운산휴양림·마동생태공원·배알도 모래밭 체험
걸으며 만난 시민들 “소소한 감동행정 더 원해”

그야말로 ‘열풍’이다. 작년부터 심심치 않게 들려오더니 이젠 어딜 가나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보인다. 효과를 두고 반신반의하던 사람들도 지난 7월 KBS <생로병사의 비밀 872회> 방영 이후 너도나도 앞다퉈 맨발로 걷는다. 유행이라니까 못 참겠다. 그래서 광양신문 창간 24주년을 기념한 특집호 게재를 염두에 두고 바쁘다는 가족들을 설득 끝에 동원해 광양지역 내 맨발 길을 직접 걸어보기로 했다.

△ 몇 걸음 만에 발바닥이 아팠지만 맨발 걷기 숙련자인 가족들은 아무렇지 않게 잘 걸었다.
△ 몇 걸음 만에 발바닥이 아팠지만 맨발 걷기 숙련자인 가족들은 아무렇지 않게 잘 걸었다.

가장 유명한 백운산으로 가자

인터넷을 뒤져 정보를 찾았다. 맨발 걷기엔 푹신한 황톳길이나 모래사장이 제일이란다. 냉큼 가족들을 섭외해 백운산 휴양림으로 향했다. 가족들은 이미 수개월 전부터 맨발 걷기를 하고 있어선지 별말 없이 동행에 응했다. 작은누나는 “걸으랄 땐 안 걷더니, 웬일?”이라며 의아한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휴양림은 주차비를 내고 이용해야 했다. 대당 3000원. 크지 않은 금액이지만 ‘한대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생각이 다들 비슷한가 보다. 무료화 목소리가 높아 내년부터는 광양시민들에 한해 무료 운영을 검토 중이란다.

황톳길 시작점에 도착하자 신발을 벗어야만 한다는 듯 신발장과 우물가가 가장 먼저 보였다. 앞에 있는 벤치에는 먼저 운동을 나온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맨발을 드러낸 채 담소를 나누고 계신다. 그 옆으론 최근에 설치한 듯 보이는 먼지털이(에어건)와 진드기 기피제 분사기가 보였다.

맨발 걷기의 효능, 발 지압의 효과 등 입간판을 꼼꼼히 읽은 후 막상 신발을 벗으려니 기분이 묘했다. 돌이켜보면 아주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 야외에서 맨발로 다녀본 기억이 없다. 아무렇지 않은 척 양말을 벗자 알 수 없는 해방감이 든다. 고작 양말 하나에 이렇게나 자연에 접한 기분이라니.

△ 백운산 휴양림 내 황톳길. 10월말 아침 땅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 백운산 휴양림 내 황톳길. 10월말 아침 땅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걷기쯤이야 뭐

호기롭게 첫 걸음을 내딛자마자 후회했다. 아뿔싸. 10월 말 아침 백운산 땅은 너무 차갑고 딱딱했다. 황톳길이라고 푹신할 거란 예상은 보란 듯이 어긋났다.

곧바로 다시 신발을 신을까 심각한 고민이 들었지만 옆에 있던 아버지의 ‘젊은 놈이..’란 나지막한 한마디를 듣고서 본격적인 걸음을 옮겼다.

채 몇 걸음 걷지도 않은 것 같은데 발바닥이 아파왔다. 마치 국장님의 날 선 지압슬리퍼를 신고 걷는 느낌이 든다. 꽤 걸은 것 같은데 중간에 있는 표지판을 보니 200m도 채 못 걸었다. 그래도 던져놓은 말이 있어 꾹 참고 걷다 보니 등허리에 땀이 맺힌다. 뛰거나 빠른 걸음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신기한 경험이다.

사실 처음엔 ‘그냥 걷는 것뿐인데 큰 차이가 있을까’란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웬걸. 맨발로 걷는 게 생각보다 힘들다. 발바닥에 온 신경을 쓰면서 걸어서 그런 걸까. 총 1.3km구간 중 절반 정도를 걸었을 뿐인데 가벼운 조깅을 한 것처럼 근육이 당겨온다. 몇 차례 걷지도 않고 효과를 말하긴 어렵지만 확실한 건 생각만큼 쉽진 않았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낼모레 칠순인 어머니는 소나무에 등 마사지를 하더니 튀어나온 바위에 발지압도 해가며 아무렇지 않게 걷고 있었다. 내 건강나이가 궁금해지면서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 양말 하나 벗는 것뿐인데 괜히 기분이 묘했다. 수줍은 발.
△ 양말 하나 벗는 것뿐인데 괜히 기분이 묘했다. 수줍은 발.

자존심에 며칠 더 걸어보자...

그저 맨발로 걷는 게 이리도 힘든 일이었다니. 내심 자존심이 상해 마동생태공원 내 맨발 길과 배알도 모래밭을 몇 차례 더 걸었다. 모래가 깔려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발이 아프진 않았다. 며칠 안되는 기간이라 효능까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느껴진 게 있다.

우선 잠이 잘 왔다. 불면증 초기 증상이 있어 새벽까지 잠들지 못했지만 맨발로 걷고 온 날은 신기하게도 자정이 되기 전에 곯아 떨어졌다. 덤으로 수면의 질도 개선됐다. 2~3시간마다 주기적으로 깨는 바람에 오래자도 피곤했는데 6~7시간동안 한번도 깨질 않았다. 아침이 조금은 상쾌해졌다.

또 한 가지 체감되는 점은 천천히 걷는데도 땀이 꽤 난다. 백운산을 걸었을 땐 날씨가 더워지고 있어서라고 짐작했는데 오판이었다. 선선한 밤에 천천히 걷는데도 불구하고 빠른 걸음으로 걸은 듯한 느낌이 든다. ‘이게 운동이 되는건가’ 싶은 기분이 들자 급속도로 유행한 이유를 알 것만 같다. 뜻하지 않게 정신적인 면에도 도움이 됐다. 땀을 흘린 후 따듯한 물로 씻고 나니 하루 내 받은 스트레스도 함께 씻겨나가는 것만 같았다.

△ 황톳길 입구에 설치된 맨발걷기 효능을 알려주는 입간판.
△ 황톳길 입구에 설치된 맨발걷기 효능을 알려주는 입간판.

광양시도 맨발걷기에 진심인가

사실 세족장이 설치돼 몇 차례 걸어보긴 했으나 엄밀히 말하면 마동 생태공원은 맨발 걷기 길은 아니다. 모래가 깔린 구간을 시민들이 걷다보니 급하게 세족장을 설치했다.

아쉬워 지려는 찰나 중마동 내에 2곳에 맨발걷기 길이 생긴다는 소식을 접했다. 자세히 알아봤더니 사실 광양시는 맨발걷기의 선두주자가 아닌가.

백운산 휴양림 황톳길은 이미 20여년전에 조성된데다 지난해에는 광양읍 2곳에 맨발걷기 길을 확정하고 공사를 시작했다. 올해는 중마동에 조성 계획을 세우고 내년 상반기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정인화 시장도 직접 현장을 찾아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조화로운 산책로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최근에는 맨발걷기 관련 조례도 제정됐다. 지난 9월 박철수 시의원이 ‘광양시 맨발걷기 환경 조성 및 활성화 지원 조례’를 발의하면서 지원 근거도 마련됐다. 그동안 광양시는 매번 유행에 한 발 뒤쳐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행정도 의회도 시민 건강엔 진심인가 보다.

△ 최근 추가로 설치한 신발장과 먼지털이용 에어건.
△ 최근 추가로 설치한 신발장과 먼지털이용 에어건.
△ 시민들이 맨발로 자주 걷는 공원이나 산책로에 세족장을 설치했다. 마동생태공원에 설치된 세족장.
△ 시민들이 맨발로 자주 걷는 공원이나 산책로에 세족장을 설치했다. 마동생태공원에 설치된 세족장.

맨발 걷기와 감동 행정

사실 순수한 의도로 맨발로 걸으러 나간 것은 아니다. 우후죽순 생기는 맨발걷기 길에 대한 우려도 있었고 운동이 되겠냐는 회의적인 시선도 있었다. 전문가들도 효과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데 성급한 판단일지도 모른다는 의심 섞인 시각도 가졌다.

그러나 맨발로 걷고 있는 많은 시민들을 만나보자 중요한 건 따로 있다는 걸 깨달았다.

“왜 맨발로 걷냐”는 질문에는 △‘TV 프로그램을 보고’ △‘지인의 건강이 좋아져서’ △‘건강에 좋다니까’ △‘그냥 부모님 따라서’ 등 다양한 대답을 들었지만 “맨발걷기 길이 추가로 생긴다는데 어떠냐”는 질문에는 한결같은 대답을 해왔다. “타 지자체보다 늦지 않게 생겨서 좋다”

지역발전을 위해 대단위 공모사업도 좋고, 관광 산업도 좋다. 문화예술도 중요하고 기업 유치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정작 시민들이 가장 바라는 건 그런 것들이 아니라 삶 속에서 소소하게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시설들을 늘려나가는 것이 아닐까. 몇 천억을 들여 조성한다는 관광지보다, 출근길에 매번 발이 걸리는 보도블록 한 군데 정비되는 것이 더 기분 좋지 않을까.

오늘도 맨발로 걸으며 ‘감동 행정’이 무엇인지 고민에 빠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