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칼럼] 토사구팽(兎死狗烹) : 토끼를 잡고 나면 사냥개를 삶는다
[고전칼럼] 토사구팽(兎死狗烹) : 토끼를 잡고 나면 사냥개를 삶는다
  • 광양뉴스
  • 승인 2024.02.23 17:54
  • 호수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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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일칼럼니스트 / 자기개발서 작가
이경일칼럼니스트 / 자기개발서 작가

전국시대(戰國時代)를 거쳐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秦)나라는 진시황(秦始皇)이 죽자 급속도로 쇠퇴해져 갔다. 

유방과 항우가 나타나 각축전(角逐戰)을 벌이다가 결국은 유방이 최종 승자가 되어 나라를 세우니 이 나라가 곧 400년을 이어온 한(漢)나라다. 

한나라의 개국 일등공신은 서한(西漢) 3걸아라 일컫는 책사로 일명 장자방 이라고 부른 장량(張良)과, 대장군 한신(韓信), 그리고 군수참모 소하(蕭何)였다. 

그러나 나라를 세울 때는 이러한 참모들이 있으므로 전쟁에서 이기고 서로 도우며 합력하였지만 전쟁에서 승리하고 나면 오히려 이런 완벽한 장수들이 근심거리로 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때 처신을 잘해야 살아남는다. 이 서한 3걸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사람들의 술수나 전투 능력, 참모로서의 역할 등등, 면면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유방이다. 이 사람들 중 누구라도 혼란한 틈을 타서 마음만 먹는다면 반란을 일으켜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 이므로 유방으로서는 한시도 경계를 늦출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중에서 지혜 많은 장량은 그 낌새를 알아 차렸는지 알아서 미련 없이 만류하는 군주를 물리치고 떠났다. 장량은 식솔들을 데리고 산세 좋고 물 좋은 곳으로 숨어들어 방원각(方圓閣) 이라는 정자를 짓고 그곳에서 조용히 글을 읽어가며 천수(天壽)를 누렸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아들들이 불만을 토로했으나 장량은 조용히 아들들에게 방원각의 의미를 설명해 주었다. “인간이란 고난은 함께해도 부귀영화는 함께하기 어렵다. 이것이 ‘권력 만고불변(萬古不變)의 법칙’과도 같은 것이다. 그냥 보기에는 둥글게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모가 난 것이 방원각 이다. 사람이 모질 때는 서릿발처럼 모질어야 되지만 세상이 평온해지면 둥글게 사는 것이 좋단다.” 이 말을 들은 장량의 자녀들은 부친의 말에 공감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한신과 소하는 잠시 개국공신(開國功臣)으로 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길게 가지 못하고 결국은 죽임을 당하는 처지가 되었는데 한신이 죽음에 이르러 이렇게 탄식했다. “과연 전해 내려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구나, 교활한 토끼를 사냥하니 사냥개는 삶아 죽이고, 나는 새를 잡고 나면 화살은 화살 통에 들어간다더니 천하가 평정되었으니 나도 팽(烹) 당하는 구나.” 이것이 이른바 팽 당했다는‘토사구팽’이다. 

여기서 전해오는 말이란 춘추전국시대 월(越)나라 책사였던 범려(范蠡)가 대부 문종(文鍾)에게 한 말을 가리킨다. 

오나라와 월나라는 서로 원수같이 싸우며 일진일퇴를 하였으나 최종 승리자는 월왕 구천(句踐)이었다. 처음에는 오나라가 승리하여 월왕 구천은 책사였던 범려와 같이 오나라 부차의 신하가 되어 살다가 3년 만에 풀려나서 쓸개를 핥으며 장작개비 위에 누워 자고(臥薪嘗膽) 복수의 기회만을 노린다. 

범려는 이때 이간책을 써서 오나라 대장군 오자서(伍子胥)를 제거하고 미녀 서시(西施)를 오왕 부차에게 바쳐 왕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다. 미녀에게 빠진 부차는 판단력이 날이 갈수록 쇠약해지고, 내분이 그칠 날이 없었다. 이 틈이 월나라는 강성해져 마침내 오나라는 망하게 되고 월나라가 대승을 거둔다. 

이때 범려와 어깨를 나란히 한 또 다른 책사 문종(文鍾)이 있었는데 내치를 담당한 없어서는 안 될 최고 고맙고 유능한 신하였다. 

그러나 범려는 상황을 똑바로 보고 스스로 판단하여 부귀영화를 마다하며 이름까지 치이자피(鴟夷子皮)로 바꿔 가족을 데리고 아무도 모르는 도 땅 으로 가서 큰돈을 벌고 천수를 누리며 살았다. 월왕 구천에게는 최고의 책사였지만 그와 영화를 함께 누리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떠나면서 동료 문종에게 편지를 남긴다. “나는 새가 잡히면 좋은 활은 숨겨지고, 민첩한 토끼를 잡히고 나면 사냥개는 삶기는 법이다.” 이리하여 최초로 ‘토사구팽’을 범려가 외쳤는데 약270년 후에 한신이 인용한 것이다. 

‘토사구팽’은 권력의 속성이다. 힘들 때는 한사람이라도 더 있으면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루고자하는 최고의 단계에 도달하면 함께 했던 사람들이 짐이 될 수 있다. 

자기의 장점은 물론 약점 까지도 너무 잘 알고 있으니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고생한 것도 너무 잘 알고 있으므로 그에 상응하는 대가(代價)도 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부담이 있으니 껄끄럽게 보일 것이다. 

부자(父子)간에도 나눌 수 없는 것이 권력인데 역사적으로 대표적인 예가 한나라 때 한신과 그 뒤 명(明)나라 주원장(朱元璋)을 도와 명나라를 세운 일등공신 호유용(胡惟庸)(호람의옥으로 인해 약1만5천명이 처형당함)이 그러했다. 

이 토사구팽은 이 시대 기업이나 정치하는 사람들도 많이 쓰는 수법이다. 

다른 말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감탄고토(甘呑苦吐)’라고 볼 수 있다. 이 법칙과도 같은 토사구팽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리더의 성향과 나아가고 물러남의 시기를 잘 살펴서 처신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가르침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