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봄이다.
가볍고 밝은 옷이 어울릴 것 같은 따사로운 햇살이 창가를 두드린다. 이즈음 광양은 다압면에서 매화축제가 한창이고 섬진강 줄기를 더 거슬러 오르면 구례 산수유 축제장으로 이어진다.
또한 광양시를 비롯한 각 기관 및 단체에서는 겨우내 봄을 기다렸다는 듯이 행사들이 쏟아지고 곳곳에 생기가 넘치는 활발한 봄이 되었다.
신학기 새 옷과 책가방을 선물 받은 어린아이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한 학년이 오른 중·고생들은 새 교과서의 첫 페이지를 펼치며 앞으로 전개될 학습에 대한 기대와 각오로, 봄은 실로 많은 이에게 희망과 설레임, 그리고 새로운 기대심 등을 선사하고 있다.
나 역시 예외일 수 없을 터, 나에게 봄은 새 책을 보게 만드는 충동의 계절이다. 시기도 시기인 만큼 자기개발과 성장을 위한 도서에 손이 먼저 가고 반면에 가을에는 사색과 언어의 유희를 즐길 수 있는 단편소설이나 시집 또는 개인 산문 등을 읽는다.
“많이 읽되, 많은 책을 읽지는 마라”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처럼 다독보다는 정독을 선호하지만 욕심이라는게 책만 보면 사고 싶고, 나와 다른 세계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보니 책장에 넣지 못하고 탑처럼 쌓이는 책이 늘고 있지만 이미 내 지식이라도 되어 있는 착각에 쌓인 책만 바라봐도 흐뭇하고 보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학생들은 책 읽기가 교과서 공부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버드아이 뷰(bird eye view)의 거시적 관점에서는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책(교과서)을 통한 정보(교육)를 얻기 보다는 미디어가 더 친숙한 청소년들은 육필(肉筆)로 감정을 전하기 보다는 문자 메시지로 거의 모든 감정을 소통하고 있으니 도서들도 전자책과 전자교과서로 바뀌는 등의 시대 발전에 뒤따르는 변화는 자연스러운 이치인 셈이다.
하지만 학생들을 지도하는 입장에서는 더욱이 수학을 지도하는 가운데 간혹 눈으로만 물끄러미 보면서 답을 구하려는 학생을 볼 때면 참으로 안타깝다.
심지어 무엇을 묻는지도 모르는 문해력이 부족한 학생들이 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문명이나 문화의 발전이 교육에 끼치는 일부의 부적절한 영향을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학창 시절엔 ‘책벌레’ 별명을 가진 친구들이 더러 있었지만, 요즘은 들어 보기 드문 단어가 되었다. 심지어 더 시간이 지나면 ‘책을 먹는 벌레’로 이해하는 학생들이 더 늘어 날것이 자명해 보인다. 나는 데카르트의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의 가장 뛰어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다.”는 말을 문해력이 떨어지고 있는 학생들이 어떻게 해석할지 의문이다.
누구든 어떤 문제를 풀어주기 위해서는 정독을 안 할 수가 없다. 나는 이게 전부라고 생각한다. 나머지는 그에 합당한 관련 공식을 나열하여 주어진 조건이나 단서를 활용하고 답을 구해내는 것은 학생의 학습 수준에 따르는 이차적인 문제가 된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소위 “실수”했다고 하는 문제를 보면 어이없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모두 고르시오’에서 하나만 선택을 하는 경우가 가장 대표적이다. 이 역시도 밑줄을 그으며 읽는 등의 ‘정독’이 부족해서라고 생각 한다.
독서에는 여러 방식이 있지만 부디 학습자는 정독을 통한 독서 습관 형성으로 학습의 기본이 되는 읽기 능력이 함양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