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은 황소 발길질
촛불은 황소 발길질
  • 한관호
  • 승인 2009.05.07 16:39
  • 호수 3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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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노동절 집회와 촛불 1돌 집회에서 경찰이 221명을 강제연행 했다. 또 이를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던 시민사회단체 회원들까지 강제로 연행해버렸다. 그러자 이번엔 검찰이 나서서 현행범으로 체포된 221명 중 확실히 반성하지 않는 사람은 전원 입건할 예정이라고 밝힌 가운데 이미 11명에게는 구속 영장이 청구됐다.

더구나 경찰은 서울시가 주관한 축제인 하이서울 페스티벌에 참가한 자원봉사자로 등록된 시민악대 단원, 이들의 즉석 연주를 구경하던 시민, 심지어 16살 먹은 소녀까지 잡아들였다. 게다가 지난해 촛불집회 이후 그동안 1천6백여명의 시민들이 처벌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야말로 경찰의 무차별 체포, 이에 발맞추어 검찰의 무차별적인 전과자를 양산하는 형국이다.

이런 검찰과 경찰의 강경 대응을 보면서 잊고 지내온 오래전의 기억이, 그 불온한 풍경이 스물 스물 기어 나온다. 1980년대, 퇴근길에 친구 몇을 만나 술이라도 한잔 하러 주점이 즐비한 마산 창동 골목에 들어서면 어디선가 사복을 입은 몇이 튀어나와 느닷없이 앞을 가로 막곤 했다. 그리곤 자신들이 누구인지도 밝히지 않은 체 막무가내로 가방을 뒤졌다. 가방에서 서점 진열장에도 꼽혀 있으나 정부에서 불온서적이라고 명시해 놓은 책이라도 나올라치면 그길로 경찰서로 연행됐다. 경찰서에 들어서면 무릎을 꿀리고 조서를 시작했다. 사돈의 팔촌까지 신원을 뒤지고 어떻게 해서든 조직과 엮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약과였다. 수많은 대학생이, 노동자가 경찰의 방패에 찍히고 곤봉에 맞아 머리가 터졌다. 이를 목격한 시민들이 너무 하는 것 아니냐고 항의하면 그들에게도 사정없이 폭력이 가해졌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끌려갔다. 노동조합에서 정당한 파업을 해도 구사대와 경찰이 여성노동자들까지 무차별적으로 짓밟았다.

그 시절,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던가. 박종철, 이한열 등 등 이름도 헤아릴 수 없는 젊은이들이 고문을 당하다 목숨을 잃었고 어떤 이는 절망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어떤 이는 의문사를 당하기도 했다. 그뿐이 아니다. 노동조합 간부, 한총련, 시민사회단체 간부들은 일거수일투족을 미행하고 도청했다.

엊그제, 또 한 사람의 노동자가 목숨을 끊었다. 대한통운 광주지사 택배기사였던 박종태씨가 ‘암울한 싸움에서 승리해야 하는데 시대가 노동자에게 죽음 요구하는 것 같다’는 유서를 남기고 숨진 체 발견됐다. 얼마 전 서울에 갔다가 시민사회단체에서 일하는 이들 몇을 만나 술자리를 가졌다. 술이 몇 순배 돌고 이런 저런 애기들을 나누던 대화는 현 시국으로 이어졌다. 어떤 이가 ‘이명박 대통령을 찍지는 않았었지만 그래도 이 어려운 나라 살림은 살리겠지 하는 일말의 기대를 가졌다’고 했다.

더구나 대통령이 ‘국민들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국민과 함께 가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까지 치졸 할 줄은 몰랐다, 절망적이다고 푸념했다. 그러자 듣고 있던 한 이가 정색을 하며 ‘이명박 정부가 그럴 줄 몰랐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고 타박했다. 그러면서 어쩌면 이제 신 독재가 시작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런 우려가 현실화될지도 모른다. 이미 정부에 대해 비판성을 견지해야 할 방송사에 낙하산 인사를 내려 보내 언로를 왜곡시키고 있다. 사회 비판적인 프로그램이 막을 내리거나 탈색되고 진보적인 사고를 가진 연예인은 출연까지 막고 있다. 심지어 재벌과 거대 언론이 방송사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도입하려 하면서 사이버 모욕죄 따위를 들먹이며 국민의 입을 막으려 하고 있다. 튀어 나오는 목소리에는 경찰 방망이가 춤춘다.

어느덧 광우병 반대로 시작된 촛불집회가 1년이 넘었다. 정부가 촛불을 끄기 위해 공권력을 동원하고 있지만 촛불은 여전히 일렁이고 있다. 그 촛불은 운동권 단체도 시민사회 단체도 아닌 시민 스스로의 자각에 의해 내 삶터와 내 먹거리를 지키려는 소박한 마음의 발로다. 그러므로 잠시 바람에 일렁이기는 하나 결코 소멸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직장인 나은선 씨는 ‘촛불은 황소 발길질’이라고 했다 (한겨레신문). 황소 발길질이 땅을 갈아서 민주주의의 새싹을 돋게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귀 담아 들어야 할 평범한 시민 목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