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의 삶을 통제하게 될 그린마일리지
내 아이의 삶을 통제하게 될 그린마일리지
  • 박영실 참학 정책위원회 위원장
  • 승인 2009.07.09 09:17
  • 호수 3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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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된 아이의 엄마가 급식도우미 때문에 학교에 갔는데 아이가 엄마를 보고도 달려들지도, 웃어보이지도 않고 공수자세로 복도를  걸어 엄마 옆을 그냥 지나치더라는 것이다. 혹시 엄마가 초라해 학교에 오는 게 창피했을까? 하루 종일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전전긍긍하다가 아이가 하교 하자마자 다그쳐 물었단다.

아이 말이 복도에서 떠들면 벌점이 부과 된다는 것이다. 그 어린 마음에 엄마를 보고 얼마나 달려들어 안기고 싶었을까? 자유롭게 폭발하는 감정을 억누를 정도로 벌점이 크게 다가온 것이다. 8살 밖에 안 된 아이에게도 말이다. 참 씁쓸한 현실이다.
자유로운 생활과 감정조차도 ‘점수화’시키는 그린마일리지는 창의적이고 자립적인 아이로의 성장을 막는 제도다.

그린마일리지는 학교현장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체벌금지에 대한 대안으로 학교생활규정을 어긴 학생들에게 체벌이 아닌 벌점을 부과하고 선행하는 학생에게는 상점을 준다는 게 주요내용이다. 현재 전국 초중고의 10%에 이르는 학교에서 시범운영 중이며 2011년까지 전 학교에 도입될 것이라는 게 교육과학기술부는 입장이다.
그 의도 자체가 순수한 것이라면 그 의도만큼은 지지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제도가 제대로 자리 잡을 가능성은 없다. 근본취지와는 달리 그린마일리지 규정 곳곳에는 그냥 간과해서는 안 될 위험한 발상들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우선 그린마일리지는 체벌에 대한 실질적인 대안이 되지 못한다. 체벌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아이들은  매 맞고 벌점까지 가중되는 이중고의 고통을 겪고 있다. 거기다가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는 봉사활동을 강요하고 이를 점수화해  입시에 적용시킨다.
또 친구의 잘못을 신고하면 그 경중에 따라 상점을 준다. 벌점을 받은 학생이 옆 짝꿍을 신고하면 상점을 얻어 벌점을 만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친구를 눌러야 내가 살 수 있는 이 질식할 것 같은 비교육적인 경쟁 속으로 우리 아이들을 밀어 넣는 일이다.

친구를 때려 부과된 벌점을 교내 봉사활동으로 무마할 수 있다.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고 반성하는 것이 아닌 엉뚱하게 선생님 잡무를 보조해 얻은 상점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 위험한 발상은 학교생활규정 위반보다 더 무서운 인간의 심성을 피폐화 시키는 일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점수를 위한 ‘선’이 존재할 뿐이다.

체벌도, 그린마일리지도 우리 아이들에게는 감내해야할 제도일 뿐,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될 수 없다. 모든 판단은 학교생활규정이 교사의 주관에 의해 점수가 대신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여기에 반발해 보지만 그럴수록 더 문제아로 지적되고 벌점의 누적으로 부당징계까지 당한다. 정형화된 틀 안에 학생을 맞추고 거기에 맞지 않는 학생은 그 틀 안에서 솎아낸다. 교육 안에서 보듬어 내지 못하고  사회로의 배출은 책임 전가이며, 교육의 근본 목적에 비추어 옳지 않다.

눈에 보이는 효과만을 과시하려는 그린마일리지는 체벌금지의 대안이 아닌 벌점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을 제도적으로 공식화 한 것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명백한 인권침해인 ‘체벌금지’가 법제화 되는 것이 우선순위가 아닐까. 
어떻게 기본생활을 점수로 계량해 아이들의 자유로운 삶(생활)마저 통제하려드는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당장 눈앞에 보이는 문제해결에만 급급해서 검증되지 않는 제도 만드는 것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방법이 무엇인지 충분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우리 아이들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