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선물
한가위 선물
  • 한관호
  • 승인 2009.09.24 09:28
  • 호수 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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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가 다가오자 동구 밖으로만 향하는 눈, 이윽고 도시 번호판을 단 차가 마당에 들어서면 짓무른 부모들의 눈에 환한 보름달이 솟을 테지요. 일일이 여삼추로 기다렸던 만남, 허나 시간은 달음박질 선수라 이내 다시금 떠나보내야 하는 자식들입니다.

노인네들은 고방을 뒤져 곡식이며 과일, 남새거리까지 자근자근 챙겨 트렁크를 그득 채웁니다. 그러지 말라고, 두고 드시라고, 손 사레 치는 자식들이지만 그 자식들이 건네준 용돈마저도 몰래 손자들 주머니에 제 챙겨주어야 직성이 풀립니다. 그래야만 덜 허전해질 것 같습니다. 자식들이 탄 차가 당산나무를 벗어나고서야 마지못해 고개를 돌리는 우리네 부모님들, 그 눈가에 어느새 제법 사위어 버린 달빛만 고즈녁히 내려앉습니다.

제 딴엔 제법 머리를 굴려 느즈막히 출발했지만 고속도로는 여전히 전쟁터 입니다. 며칠간 잘 먹고 잘 놀았지만 다시 삭막한 생존의 현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고향에서 얻어가는 생성하는 기운이 삭정이 같은 도회 생활을 견디는 버팀목이 되어 줄 겁니다. 그래서 고향은 어머니의 품속이라지 않습니까.
한가위를 앞두고 미리 그려 본 풍경입니다.

이번 한가위 선물은 준비하셨습니까. 아니면 통장을 펼쳐놓고 적금, 학원비, 세금을 제하며 푼돈까지 달달 긁어서 무엇을 사야하나 고민 중이십니까. 그렇다면 한가위 선물 이러면 어떻습니까.
개그맨 김재동은 외제차는 안 산다, 그랬다지요. 제법 벌어서 잘 해놓고 잘 먹고 살지만 내가 받은 것을  누군가에게 돌려주며 산다고도 했다지요.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백화점이다 외제 물건이다 때깔 좋은 것, 비싼 것, 그런 것 보다 재래시장으로 나갑시다. 가서는, 고향에서 만날 내 어머니 같은 이들이 펼쳐놓은 좌판 물건을 삽시다. 양말 한 켤레, 내복 한 벌, 과일 한 무더기도 좋지요. 보기에 그럴듯한 물건 보다 진종일 시린 무릎 조아리며 버텼을 어머니들의 고단한 삶을 들어줍시다. 동네 슈퍼, 임대료 내기에도 버거운 구멍가게들도 있습니다. 그게 명절의 참 미덕이 아닐 런지요.
그렇게 저렴한 선물을 준비 하노라면 애초 세운 지출 계획보다 몇 푼 여유가 생길 테지요. 하지만 이왕 쓸려고 한 돈이니 그 돈, 의미 있게 마저 씁시다.

며칠 전 한 국회의원을 만났더니 국회 예산소위 일을 맡고 있는 데 내년엔 가난한 이웃들의 삶이 더 힘들어 질 거라고 걱정합디다. 그 분의 말씀인즉슨 ‘예산이 4대강 사업에 집중되면서 모든 부분의 예산이 줄어 들 거라’고. 특히 못 가진 사람들이 국가로부터 혜택을 보던 복지 예산이 많이 줄어들 거라고 합니다.

그러니 자식이 없어 찾아올 이 하나 없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그 마음 시린 이들에게 양말 한 켤레는 난방처럼 따스운 기운이 될 테지요. 요즘은 시골이라도 어딜 가나 장애인들, 피붙이 없는 아이들이 모여서 사는 곳들이 더러 있지요. 명절이라 행정에서 과일 몇 상자 전해 질 테지만 그곳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 런지요.
단언컨대, 그곳에 다녀오면 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초라하게 느껴지던 우리네 인생이 축복임이 자명해질 겁니다. 하고, 나누면 나눌수록 돌아오는 것도 많다는 걸 배우게 될 겁니다.

고향에 가시면 고향 지킴이들을 꼭 챙겨 봅시다.
말로는 공기 좋고 인심도 좋아 도시 사는 것 보다 낫다고들 하겠지요. 뼈 빠지게 일하고 눈치 보며 사는 월급쟁이보다야 내 농사짓는 게 속편해 좋다고 할 겁니다. 도시에 사나 시골 살이나 가진 게 없는 삶은 매 한가지겠지만 그들이야 말로 우리네 마음의 안식처인 고향을 보위하는 이들이지요. 에오라지 땅에 코 박고 사는 그들이 있어 논과 밭이 여전히 일용할 양식을 생산해 냅니다.

새마을 부녀회장, 그런 형수님들이 있어 마을 경로잔치도 열리고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지라 마을이 때깔 납니다. 이장님 보시거덜 랑 슬그머니 봉투 하나 건네세요. 대부분 환갑이 넘은 이장님들, 하지만 마을에서는 어른 축에도 못 낍니다. 그 노고를 위안하고 마을 행사에 쓰시라고 향우님들 십시일반이면 마을 살림살이가 나아 질 겁니다.

해마다 반복되는 명절, 그저 의무를 치르듯이 다녀오던 고향 길이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이제 마음이 한결 개운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아주 가끔일지언정 세월의 두께만큼이나 쌓여가는 마음속 곰팡이를 털어내며 삽시다.    

며칠 후면 한가위입니다. 시절이 아무리 어렵기로서니 그래도 한결 마음 넉넉해지는 게 명절입니다. 그리고 올해도 어김없이 아무개가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해달라며 동사무소에 쌀 몇 포대 부려두고 갔다는 미담이 보도될 것입니다. 광양신문에서도 만나고 싶은 기사입니다.  좋은 날, 맛난 명절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