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은 풍년, 쌀 값은 흉년
쌀은 풍년, 쌀 값은 흉년
  • 한관호
  • 승인 2009.10.08 10:37
  • 호수 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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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섬, 직녀에게를 부른 김원중이라는 가수가 있다.
이 친구가 90년대 담양에서 열린 농민대회에 초청을 받았다. 라면 값 만도 못한 쌀값을 보전하라는 궐기대회였다. 연사들이 피폐해진 농촌의 실상을 거론하며 저마다 분노한 농민들을 위안했다.
김원중은 농사를 지어본적이 없었다. 에오라지 노래 하나로만 밥을 빌어먹고 살아온 터. 그런데 햇빛에 그을린 새까만 농민들의 얼굴, 옹이 박혀 갈퀴 같은 손들을 보노라니 미안하더란다. 노래로 농민들의 애환을 위로하기 전에 무언가 한 마디 위로를 건네야겠는데 도무지 마땅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더란다. 그가 고민 끝에 던질 말 ‘여러분, 저는 다른 사람보다 밥을 많이 먹습니다’ 였다.

바야흐로 추수철이다.
황금빛으로 물든 들판, 농민들은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 올해는 유난히 태풍도 없었고 벼멸구가 극심하다는 보도도 없었다. 그야말로 대풍이다. 애지중지 가슴 끓이며 키워온 벼, 이제 탈곡만 하면 된다. 객지 사는 자식들 양식, 할멈과 먹을 떼 꺼리만 제하고 농협에 수매를 하면 제법 두둑한 몫 돈이 될 것이다. 
그런데, 세상사 호사다마라던가.
풍년이라고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니었다. 지난해 국내 쌀 재고량이 60만 톤, 올해도 81만 6천 여 톤의 재고가 예상된다. 그러니 쌀값이 바닥을 치게 생겼다.

국감장에 나온 농민회 이창환 실장은 쌀 재고량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묻는 민주당 박주선 의원의 질의에 ‘확실한 방안은 대북지원이고 그 다음이 해외지원, 그 다음은 기초생활수급자들에게 50% 정도를 현물로 지원하는 것’이라는 대안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북한에 쌀 40만 톤 정도를 지원하면 한 가마당 7천 원 정도 쌀값이 올라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쌀 재고량 보관비만 10만 톤 당 300억원이 든다며 올해 발생할 예상 재고량 80여 만 톤의 보관비만도 2,400억원이 들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자 한나라당 황진화 의원도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대가, 납북자 국군포로 송환을 위해 쌀 지원을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산가족 상봉 대기자가 8만 6천명이니 860만 가마가 들고 이는 69만 톤 정도이니 쌀 재고량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우리에게는 지천으로 남아도는 쌀을 밑천으로 이산가족 상봉을 상설화 하고 국군포로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북한 동포들은 식량을 해결하고 우리는 농민들을 살리는 길이니 이거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아닌가.  

그러나 남북 협력기금으로 쌀 40만톤과 비료 30만톤의 예산이 잡혀있는데 왜 지원하지 않는 것이냐는 민주당 박상천 의원의 질의에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검토 하겠다’는 소극적, 원론적 답변만 내놓았다. 또 정부가 내 놓은 대안이라고는 예년보다 쌀 10만 톤 가량을 더 사 들이겠다는 것뿐이다. 
성난 농심들이 다 익은 벼를 갈아엎었다. 시국이 이러한 때, 농민들을 위해 노심초사해야 할 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난 5일, 국회농림수산식품위원회는 농협에 대한 국정감사를 열었다. 이날 여야를 가리지 않고 농협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보도에 따르면 농협의 한 간부는 농촌사랑상품권 판매 대금을 비롯해 2억 7000여만원을 자기 주머니에 슬쩍했다. 이런 사례를 비롯해 최근 3년간 농협직원 35명이 137억원을 횡령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면서도 형사고발은 단 8명뿐이고 대부분이 정직, 감봉, 견책 등 가벼운 징계에 그쳤다.
그런 한편, 농협은 무려 821억원어치에 해당하는 골프회원권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군납을 이유로 쇠고기를 수입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농협의 주인인 농민들은 아사직전인데 공금을 횡령하고 골프나 즐기고 외국산 쇠고기나 들여다 팔고 있으니 반 농민적인 농협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농민들의 한탄이다.
쌀은 풍년, 쌀값은 흉년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농민회는 지난해부터 대북지원 등 구체적인 대안을 줄기차게 제시해 왔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 때 나온 ‘서울 불바다 발언’에도 15만톤이나 제공되었던 대북 쌀 지원은 이명박 정부 들어 중단되어 있다. 이런 우매함을 두고 시중에서는 ‘멀쩡한 길을 두고 산으로 간다’고 했던가.

오늘부터 김원중 처럼 밥이라도 많이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