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을 빙자한 반강제적인 학부모동원 이제는 사라져야한다
자율을 빙자한 반강제적인 학부모동원 이제는 사라져야한다
  • 박영실 참학정책위원장
  • 승인 2009.10.08 10:57
  • 호수 3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학부모들은 ‘가정통신문’을 받는다. 청소당번, 녹색어머니회, 도서관사서 같은 활동 중 무엇에 참여 할 수 있는지 적어내는 일이다. 형식은 자율적으로 참가여부를  알리도록 되어 있지만 학부모들은  사실상 강제성을 느낀다.
내년에 큰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 시켜야 하는 필자에게 선배학부모들은 “이제 학교 청소하러 다니느라 바쁘겠네~” 열심히 쫓아 다녀야 학교를 무사히  졸업할 수 있다는 조언을 서슴치 않는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이상 엄마가 학교에 나가 무슨 일이든 담당하고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건 이제 학교 측이든 학부모측이든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아이가 간부진을 맡은 경우는 더욱 심하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  친구들과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선생님께 미움 사지 않을까? 전전긍긍, 노심초사하는 엄마들에게 학교측의 요구는  의무사항처럼 받아들여진다.
일주일에 몇 번씩 돌아오는  청소당번 날이면 선생님 좋아하는 커피를 따로 끓여 보온병에 담고 간식을 준비한다고 한다.  학생에게 하듯 곳곳을 청소하도록 지도하는가 하면 이곳저곳  분주하게 청소하는 학부모를 뒤로 한 채  저쪽 한켠에서 커피를 마시고 계시는 선생님을 보면서 모멸감을 느끼는 학부모도 있었다.
청소당번 때문에 갓 두 돌 지난 아이를 옆집언니에게 사정사정해 맡겨 놓기도 하고  정작 내 아이들은 위험스럽지만 집에 홀로 방치하게 된다며 울먹이기도 한다.  일하는 엄마도 학교 눈치 보기는 마찬가지다.

자녀에 대한 교육열이 세계 최고라는 대한민국에서는 부당함을 알면서도 ‘자식사랑’을 위해 ‘엄마의 마음’으로 언제라도 아이를 위해서라면 한걸음에 달려가야 한다는 이데올로기가 깊숙이 뿌리 박혀있다.  언제든지 엄마의 이름으로 호출해 낼 수 있는 싸구려 노동력, 즉 자식을 볼모로 한 학부모 노동력 착취이다. 
청소당번제, 녹색어머니회(등하굣길 교통정리), 자모회 등은 엄마손을 조직하고 호출하는 장치다.  이것들은 이미 정형화된 틀을 갖추었다. 

바자회에서 국수를 삶게 만들고 유리창을 닦고 화장실, 복도 청소는 물론 스승의 날 행사 때는 앞치마를 두르고 선생님 식사 챙기기에 분주해 하는가하면, 소풍, 야외활동, 체육대회 때는 학생들을 보호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학부모들은  시도 때도 없이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학교에 동원된다.
이건 너무 비약적이라 비난 할 수 있다.  교육계 인사들과 학교는 강제성 없는 봉사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하지만 자녀를 학교에 맡긴 이유 때문에 자율적이지 못하며, 반강제적인 것임을 학교측이 더 잘 알것이다.

학부모 학교참여는 필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학부모  학교 참여는 치맛바람이 될 소지가 충분하며, 학교 참여 대부분의 활동이 학교 허드렛일을 돕는데 그치고 있으며, 꼭 필요하다기 보다 오히려 없어져야 할 일들이다.  교사가 모범이 되고 솔선수범하여 아이들과 함께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교사가 어렵다면 공교육 체계가 잘 갖추어진 외국처럼 교원외 학교직원, 교육요원 그리고 용역업체를 대행해야 할 일이다.

지금의 우리국가는 공교육, 학교 교육을 외면하고 있다. 교육에 드는 비용을 모두 국민 개개인에게 부담시키고 있으며.  국가에서는 교육재정을 늘려야 함에도 지금 우리 교육예산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단위 학교로 떠넘기고 학교는 학부모들에게 떠넘기는 악순환 속에서 자식을 볼모로 둔 학부모들만 신음하고 있다.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학부모의 주머니, 시간, 노동력을 통해 해결하려는 교육계의 태도는 잘못되었다.

이는 의무교육의 취지에 어긋나는 일이다.  의무교육이란, 국가에서 교육을 책임진다는 약속 하에  아이들을 학교로 모아 가르치는 제도다.  학교는 학부모에게 요구할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정부에 요구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이제 더 이상 자진 봉사 운운하며 아무 때나 학교일에 학부모 동원하는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  학부모는  학교 눈치 안보고 당당하게 학교 보내고 싶다.

 학부모는 교사와 함께 학생교육을 책임지는 동반자이자 협력자이다.  청소, 교통도우미등 학교편의에 따라 동원되는 존재가 아니라 교육의 발전을 위해 협력하고 소통해야 하는 교육의 주체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